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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Dec 21. 2020

The Names of Jesus

러시아의 세인트피터스버그라는 도시에 내 친한 친구 가족이 살고 있다. 이곳은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데 러시아 서쪽 해안(발트해)에 위치하고 있다. 발트해는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구분하는데, 핀란드와 스웨덴, 에스토니아와 같이 겨울이 길고 추운 지역에 위치한 나라들이 바로 이곳에 위치해 있다.  


얼마 전 내 친구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해가 너무 짧아져서 거의 어둠 가운데 사는 거 같다고 했다. 해가 오전 10시나 돼서야 뜨고 오후 4시면 진다고 하니 하루 24시간 중 1/4만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셋이 있는데, 항상 12월이 되면 햇볕이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한다. 놀이터에서 애들을 데리고 놀다가 잠시라도 빛 한줄기가 나오면 그곳에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가만히 서 있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좀 안 좋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말하길, 거기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기의 몸이 빛을 필요로 하고 있고, 매일 햇볕을 원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감사한 것은 빛으로 오셨다는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을 들으니 이사야서 말씀이 생각났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9:2). 


분열 왕국시대의 혼란과 암흑 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줄기 희망의 소식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한 아이가 날 것인데, 그 아이로 인해 한 나라가 세워질 것이고 그들에게 빛으로 올 것이란 어찌 보면 모 아니면 도와 같은 말로 이사야가 예언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로부터 750년이 지난 후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예수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많은 이름들이 있다. 그리스도, 임마누엘, 메시아.  그런데 이사야는 그 빛으로 올 아기의 이름을 네 가지로 소개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기묘자 모사는 두 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이다. 기묘자는 “기적의” “감탄할 만한”이란 형용사인데 쉽게 말해 “우와!”라고 누군가를 놀라게 할 수 있을 때 쓰이고, 모사(謀士 “꾀 모” “선비 사”)는 전략가나 조언자, 또는 계획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놀라우신 조언자”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라고 번역된다.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의 “전능하신”이란 단어의 원어 뜻은 “용맹하다”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당시 강력한 이방 국가였던 앗수르에 의해 침략되었고, 멸망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땅에 남은 자들, 즉 가장 힘없고 연약한 자들을 가장 강력한 앗수르의 손에서 구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21). 능하다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싸워 이겼을 때처럼.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는 처음과 끝,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 구약의 이스라엘과 지금 예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 이르기까지 인종, 민족, 계급을 모두 뛰어넘어 그들을 기억하시고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의 평강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샬롬”이란 단어이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던 시대에 전쟁이 없던 상태를 두고 샬롬이란 단어를 썼었다. 전쟁이 없다는 이야기는 주변 나라와 관계가 온전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샬롬이란 단어는 관계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샬롬의 왕으로 오는 아기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사람과 사람 간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온다라는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 즈음이 나에게는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를 쓰고, 행사나 모임에 참여하며 기쁜 마음과 추억을 쌓는 계절이었는데, 올해 코로나의 어퍼컷으로 그렇게 기쁘지도 설레지도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빛으로 온 아기 예수가 나를 항상 밝혀주고 따뜻하게 해 줬었는데, 올 크리스마스는 그 빛이 나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이번에는 네가 빛이 있는 곳으로 와봐. 네가 좀 와서 날 설레게 해 줘. 나도 너한테 관심받고 싶어.’ 


코로나야. 모든 것을 멈춰줘서 고맙다! 올해는 섬기려 오신 예수님을 내가 섬겨볼게. 예수님을 한 번 징하게 생각하고 그 이름의 의미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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