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성장의 첫 관문: 모든 태도의 뿌리, 경청
"말투가 그게 뭐야!"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알아서 할 게! “
아이는 부정적이고, 짜증 내고, 방문을 닫아버렸다.
속마음을 감추고, 피했다.
해야 할 일은 미루고, 잘못은 남 탓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속이 탔다.
우리 부모들은, 그 '행동'과 '태도'만 보고 지적하며 갈등한다.
"왜 저럴까", "버릇이 없다"고 아이를 탓한다.
'태도가 나쁘다'고,
'저 태도만 고치면 된다'고 아이를 잡는다.
태도가 나쁘면 관계마다 적을 만들고 꼬리표가 달릴 것이라며...
하지만, 그 '가시 돋친 태도'라는 껍질 속에,
그저 '사랑받고 싶은 아이',
'인정받고 싶은 아이'가
숨어 울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울부짖는 사춘기 큰아이 앞에서,
'듣지 않는' 엄마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내 방식대로만 아이를 끌고 가려했다.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그 길고 외로운 싸움이 끝난 뒤에야, 깨달았다.
문제는 아이의 '태도'가 아니라,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공감해주지 못한'...
바로 '나의 태도'였다는 것을.
아이들의 그 수많은 '나쁜 태도'들은,
공부에서도 '경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아이가 경청을 하지 않는다.
아예 귀를 닫고 있거나,
바로 앞에서 한 이야기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귀를 닫고 있는데,
학교나 학원 수업이 머리에 들어올 리 없다.
공부뿐 아니라,
남과 소통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공부방 프로젝트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한 변호사(조우성)의 강연을 보았다.
그는 법정에서 말로 싸우는 사람이지만,
그가 말하는 '경청(傾聽)'이란, 그저 '듣는(hearing)' 것이 아니었다.
'몸을 기울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공감하며'
상대의 감정을 함께 이해하는 '자세'였다.
'아!'하고 머리를 맞은 듯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만 찾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육아하며 아이들을 키우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버럭' 화를 내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치만 보고, 조용히 참는 아이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은 자주 무너지는 아이들.
누구 하나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 없이,
점점 무기력하게 변하는 아이들.
티 안 나게 견디고,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속에 온 세상을 품고 있는 줄도 모르고 크는 아이들...
그 '전쟁'을 멈추고,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더 큰 소리'나 '논리'가 아니었다.
그저, '네 마음을 안다'고 전하는 단 한마디의 '말'이었다.
어둡던 얼굴의 아이에게, 난 그저 물었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오래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창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에 붙어있던 '낙인'을 떼어낸 말이었다.
자신을 의심하며,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가능성보단 한계를 먼저 보며 스스로를 부정했던 아이.
겉으론 멀쩡한 척해도, 속은 '전쟁' 같던 아이.
나의 한 마디에,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위로를 받고 마음을 쏟아내는 아이에게
난 한 마디 더 건넸다.
사춘기. '재성장'의 시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훌륭한 조언'이 아니었다.
사춘기 막막한 터널에 갇힌 아이들에게,
'앞서가는 선생, 부모'가 아니라,
그저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읽어주는' 단 한 사람의 '동행자'만 있다면,
아이는 그 터널을, 생각보다 쉽게 스스로 빠져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