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에서 태도로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모든 나무가 거기 있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나무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며 알아차리지 못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이 오히려 나무를 알려는 관심조차 증발시킨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 구절을 읽어주며,
우리 주위의 당연한 존재들 – 든든한 부모님, 물질적 풍요, 건강 – 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감사함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스쳐갈 뿐,
아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주위를 탓하며 불평했다.
어쩌면 고생 없이 자란 우리 부모 세대처럼,
아이들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가진 것들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 역시, '죽고, 아프고, 돈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나서야 변했던 것처럼,
'절실함'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했던 것은,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돼요..”
눈물을 쏟는 아이들에게 난 그 ‘열심히’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 준다.
아이들은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욕심들만 낸다.
일타 강사, 공부법, 효율성만 따지며 쉽게 얻을 궁리를 할 뿐,
‘이만하면 됐어, 충분해!’하고 자족한다.
그럴 땐, 자연과 삶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시를 짓는 시인으로
알려진 조선 중기 시인 ‘김득신’.
어떤 책은 11만 3천 번을 읽으며 59세 문과에 급제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춘기 때 체력 부족의 늪을 겪고,
풀린 눈으로 빈 가방 메고 터덜터덜 다니는 큰아이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열심히’ 키웠지만, 방향성 없이 달려온 ‘열심히’에 대한 원망이 터져 나왔다.
공부방을 하면서, 아이들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체력이 우선이었기에
운동으로 정신을 키우기 위한 ‘몸, 마음, 정신의 힘’ 프로젝트를 했다.
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시간을 쌓으니 체력이 좋아지고,
공부에 마음을 냈다. 그리고, 마음 또한 건강해졌다.
또, 체력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힘'이다.
어렸을 적엔 부모와의 애착으로, 클수록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아가며 자아 정체성을 확립한다.
난 현명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실패를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나의 삶에 대해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나 자신'과 '세상'을 설득해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라는 걸 알았다.
막막한 현실에서 등대가 되어준 것은 책이었고,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가령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기록이다.
저자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처절한 기록은, 생존 자체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절실한 질문과 답을 담고 있다.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태도'야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삶의 태도.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이 길러야 할 자산이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보다, 여러 경험을 통해 몸에 익힌 '끈기', '성실', '노력'의 습관이
힘든 순간 아이를 지켜줄 진짜 힘이 된다.
10대엔 공부를 통해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는 시기이므로 좋은 태도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까지 어떤 일을 해내는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절실함'에 있었다.
"절실함이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향해 기형적으로
줄기를 뻗어 올리는 나무의 생존 의지다."
그 빛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 존재를 강하게 만든다.
과수원에서도 물고랑을 멀리 둘수록 뿌리가 더 길고 넓게 뻗는다고 한다.
물과 빛을 갈망하는 절실함이 나무를 더 강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을 쌓기 위해 운동을 시켰다.
무언가 끝까지 해내는 힘.
그것은 하루하루 절실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있었다.
나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보다
운동장에 먼저 나가 준비하는 태도를 5년간 보였다.
남과의 약속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실히 살아내는 뒷모습을 보여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