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엄마들이 모르는
'결핍 육아'의 기적

큰아이의 천운

by 고백맘

내 안의 또 다른 아이

누구나 가슴속에 크고 작은 상처를 품고 산다.

불안정한 사춘기를 지나며 그 상처들을 꼭꼭 숨겨둔 채,

우리는 '괜찮은 어른'인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 순간, 그 가면은 벗겨진다.

모르고 살았던 내 상처가 자식을 통해 민낯을 드러내고, 불쑥 튀어나와 나와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 고집부리는 큰아이가 도무지 감당되지 않았다.

모든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렸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래?"


하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삼 남매 사이에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서러웠던 어린 나.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던 엄마에게 느꼈던 그 원망.

반항하는 큰아이는 바로 '상처받은 내 어린 시절의 민낯'이었다.


두 아이의 전쟁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국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하나는 내가 낳은 '내 아이'.

다른 하나는 내 마음 깊이 숨겨놓은

'상처받은 어린아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 두 아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싸우고 있었다.

큰아이는 소리쳤다.


"엄마는 언제 내 말 들어준 적 있어?"


나는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당당히 맞섰지만,

사실 나는 아이 옆에 있었을 뿐,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지시하고 명령하는 엄마였다.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내 안의 '서러운 아이'가 자식에게서 그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맘대로 해"라는 뒤늦은 항복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이런 말을 남기셨다.

"네가 몸이 약해서 늘 제일 안쓰러웠어."

그 한마디에 수십 년간 나를 가뒀던 '나 몰라 딸'의 감옥이 무너졌다.


엄마도 나를 사랑했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이와 갈등하던 어느 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아이에게 왜 소리치는가? 아이의 실패가 두려운가, 아니면 나의 실패가 두려운가?'

행복하지 않은 엄마가 아이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강요할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소리쳐도 아이는 자기 인생을 살 것이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 네 맘대로 해!"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내 품에서 아이를 놓아주는 뒤늦은 '독립 선언'이었다.


냉정한 이별, 그리고 성장

그 후, 우리는 서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제껏 내가 아이를 업고 뛰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제 발로 뛰어야 했다.

성적이 떨어져도, 넘어져도, 나는 입술을 깨물며 지켜봤다.

대신 일으켜 세워주는 손길을 거두었다.

실패하고 일어서는 그 과정만이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전날, 아이가 울면서 물었다.

"나 이제 누구 믿고 살아야 돼?

엄마도 아프고, 아빠도..."

나는 눈물을 삼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너 자신을 믿고 살면 돼. 엄마가 그 힘 하나는 길러줬어."

그렇게 세상 밖으로 아이를 밀어냈다.

마음이 찢어졌다.

친구들이 다 가진 비싼 노트북 하나 사주지 못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아이를 볼 때면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아이는 강했다.

엄마에게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버텨냈다.

"이거 해줄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언제나 "괜찮아"라고 답했다.

사춘기 때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이가,

이제는 아픈 엄마와 동생을 걱정하는 든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진정한 독립을 위하여

얼마 전, 아이의 대학 졸업식에 갔다.

입학 이후 처음 가보는 학교였다.

혼자서 그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친정 부모님 곁에서 늦게까지 도움만 받고 자라 철이 늦게 들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빨리 철이 들어 자기 길을

가길 바랐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무능'과 '가난'이 아이를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운 셈이었다.


내가 훌륭한 부모라서 아이가 잘 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아이의 손발을 묶던 끈을 놓았기 때문에 아이는 자랐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너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 쥐여주고 등 떠밀어 보내는 것임을.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부모의 실패가 이 아이의 천운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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