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끝내 말하고 싶은 것
“엄마, AI 너무 믿지 마요. 그 시간에 책 읽고, 산책하세요.”
요즘 AI를 전공하는 아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반대로 나는, AI를 안 쓰면 뒤처진다고 믿으며 기를 쓰고 파고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자주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AI를 경계하는 아들과, AI를 붙잡고 씨름하는 엄마.
그 싸움이 반복될수록 나는 같은 질문 앞에 멈췄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AI에 매달렸을까.
처음엔 남들이 좋다는 강의를 듣고,
잘 쓴다는 프롬프트를 받아 그대로 따라 쳤다.
정리도 되고, 요약도 됐다.
겉으로 보면 꽤 그럴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비어 있었다.
내가 공부방에서 오래 보아온 아이들의 성장 속도,
사춘기 부모의 눈빛에 스치는 미세한 떨림,
아이와 부모 사이에 흐르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 같은 것들.
그런 결이 AI의 대답에서는 자꾸 빠져나가 있었다.
깔끔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정확했지만 살아 있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내가 아직 내 질문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몇 달을 헤매고 나서야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가 또렷해졌다.
AI는 도구다.
방향을 잡는 건 질문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문장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좋은 질문은 한 번에 튀어나오지 않았다.
순서가 있어야 했고,
내가 실제로 부딪혀 본 문제여야 했고,
무엇보다 나만 던질 수 있는 뾰족한 질문이어야 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AI에게 일을 맡기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AI를 데리고 내 생각을 더 깊이 파고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AI는 정리해 주고, 바꿔주고, 시뮬레이션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더 물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밀고 들어가야 하는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그랬다.
문제가 생기면 마음부터 다잡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와 시스템부터 살피는 사람이었다.
공부방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공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생활 리듬과 밥상, 체력과 습관을 보았다.
왜 어떤 아이는 금방 무너지고, 어떤 아이는 오래 버티는지.
왜 어떤 집은 같은 말을 해도 평온하고, 어떤 집은 늘 전쟁 같은지.
나는 그 차이를 오래 관찰해 왔다.
지금 AI를 파고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춘기 부모와 아이들에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따뜻하게 닿으려면
어떤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장기적으로는 부모가 관계와 공부와 감정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다.
단기적으로는 오늘 밤 아이와 덜 싸우게 해주는 한 문장이 필요하다.
그 둘 사이를 잇는 도구 중 하나가 지금 내 손에 쥔 AI다.
아들이 “AI를 너무 믿지 말라”라고 말할 때 나는 단지 반박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어디서 막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그 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AI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기술만이 아니라 현장의 갈망도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이론서가 늘 현장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듯, 좋은 기술도 사람의 삶에 닿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
그런데 아이는 다시 사춘기 소년이 된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나가요.” 그 한마디로 귀를 닫는다.
오늘 공부방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봤다.
귀를 닫은 사춘기 딸과, 말을 걸고 싶은 아빠 사이의 전쟁.
생각해 보면 둘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과, 그 아빠가 딸에게 닿고 싶은 마음은
결국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전하고 싶은 것은 분명한데, 받아줄 귀가 닫혀 있는 자리.
작년에 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아들은 아직 그 일을 모른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여러 번 깊은 밤을 건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신과 한판 붙고 싶었던 밤도 있었다.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장이 바뀌었다.
“왜 나에게”가 아니라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때 조용히 떠오른 말이 있었다.
세상에 나가서 너의 이야기를 하라.
어쩌면 내가 지금 강의를 듣고, AI를 붙잡고,
사춘기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과 콘텐츠로 풀어내려는 이유도
결국 그 한 문장 때문인지 모른다.
조금 덜 헤매게 하고 싶어서.
조금 덜 외롭게 지나가게 하고 싶어서.
이번 주 아들이 내려온다.
아마 또 AI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말해주고 싶다.
네가 지금 서 있는 자리,
동생이 자기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자리,
공부방 아이들이 자기 속도로 자라온 자리.
그 뒤에는 늘, 엄마가 밤마다 정보를 파고
책과 강의를 뒤지며 너희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고 애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AI를 믿지 말라고 말하는 너도 맞고,
AI를 도구로 써보려는 나도 틀리지 않다.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똑똑한가 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붙들고 사는가,
어떤 이야기를 끝내 세상에 남길 것인가다.
엄마는 지금, 엄마만 던질 수 있는 질문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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