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을 떠난 아이의 새해 인사에 대한 답장
늘 곁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면,
그 자리가 이렇게 넓어 보일 줄은 몰랐어요.
매일은 아니어도,
어쩌면 나도 매일 당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던 당신의 단단함이
뒤늦게야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우리는 자란다는 걸 ‘독립’이라고 배웠지요.
그 말이 멋있게 들리던 날도 있었지만, 실은 알았습니다.
독립이란, 기대던 손을 하나씩 놓아보는 연습이라는 것을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홀로 서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이미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오랫동안 누군가의 딸로만 남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내게 온 아이들만큼은 세상에 내보낼 때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습니다.
나처럼 헤매지 않기를,
나처럼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지독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작년 한 해, 참 많이 무너졌습니다.
심한 번아웃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았습니다.
웃어야 할 자리에서 웃지 못했고,
다정해야 할 순간에 마음을 숨겼습니다.
그게 참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참 이상한 거 같아요.
다 무너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문득 다시 일어나고 싶어 집니다.
이제는 조금 떳떳해지고 싶습니다.
세상을 향해 다시 내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 졌습니다.
아이들이 내 등을 밟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랐던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새로운 꿈을 꿔야 하는 시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조금 더 성실하게, 나를 위해 살아보려 합니다.
연말쯤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기를.
잘 버텼다고, 우리 참 애썼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 서는 과정이라는 것.
하지만 그 말이 곧 ‘혼자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요.
얼마 전 할아버지가 크게 다치셨던 밤을 잊지 못합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울었습니다.
그 밤은 너무 길어서, 해가 다시 뜰 거라는 확신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고,
기적처럼 할아버지는 눈을 뜨셨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끊어졌던 뇌신경이 살아났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요.
그 밤, 나를 붙들어 준 것도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울어주던 이,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던 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준 온기들.
결국 우리는 관계 속에서 숨 쉬고, 관계 속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우리의 시간들,
아이들의 어린 시절,
함께 웃었던 그 찰나의 순간들을요.
언젠가 당신이 힘겨워질 때,
"그래, 나 그때도 견뎠지" 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울어도 됩니다.
버거우면 잠시 멈춰도 됩니다.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 해낼 사람입니다.
나는 그걸 믿습니다.
우리는 결국 혼자 서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