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게 건네고 있는가
아빠가 병원 복도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연락을 받은 건 오후였다. CT상 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병원에 도착해 마주한 얼굴은 이미 전과 달랐다. 말문이 닫혀 있었고, 두 다리는 힘을 잃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 끝에 겨우 걸터앉은 몸이 낯설었다. 다섯 살 아이도 아닌,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된 치매 환자가 거기 있었다.
다시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빠를 집으로 데려와 그 밤을 지켜보고 싶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빠는 더 불안해졌고, 나는 혼자 감당이 되지 않아 후회가 되기도 했다. 침대에 눕혀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어디를 가려는지, 무엇이 그토록 초조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눕히고, 팔을 붙들고, 등을 쓸어내렸다. 조금 진정되는가 싶으면 또 몸을 일으켰다. 그 반복이 밤새 이어졌다.
"아빠, 괜찮아요. 여기 집이에요. 제가 있잖아요."
낮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낯선 말이 아니었다.
둘째가 어린 시절, 밤마다 잠에서 깨 울던 시간을 지나며 입에 밴 목소리였다.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아빠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셨다. 처음이었다.
아빠의 기저귀를 채우는 일. 손이 떨렸고,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다.
아빠의 등을 받치고 몸을 돌려드리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자식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아빠의 마음 또한 오죽했을까. 가슴이 찢어졌다.
곁에 있던 딸은 말없이 할아버지 곁을 맴돌았다.
손등에 이불을 덮어주고, 물을 떠 오고, 베개를 고쳐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조용한 움직임이 오래 남았다.
돌봄은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보며 몸으로 배우는 것인지도 몰랐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밤새 아무 말도 못 하던 아빠가 몸을 일으키더니 작게 말했다.
"대구탕 한 그릇 먹고 싶구나."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어젯밤의 아빠와 지금 이 목소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일어나는 사람은 아빠만이 아니었다.
붙들려 일어나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밤새 흔들리던 사람은 아빠만이 아니었다. 나도 오래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보면 삶은 늘 허겁지겁 지나갔다.
죽음이 왔고, 병이 왔고, 생계가 흔들렸고, 간병의 시간이 이어졌다.
하나만 닥쳐도 사람을 주저앉히는 일들이 겹쳐 왔는데도, 그때마다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냈다.
버텨야 했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 오래 몰랐다.
살아내는 동안에는 이유를 묻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 힘의 뿌리에는 아빠가 있었다는 것을.
잘했을 때보다 흔들릴 때 더 먼저 내 편이 되어주었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실패했다고 해서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들은 어린 날에는 그저 다정한 위로처럼 들렸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토대였다. 삶이 흔들릴 때 끝까지 바닥으로 꺼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마음의 바닥. 자존감이라는 것은 거창한 성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반복해서 들은 몇 마디 말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춘기 둘째와 부딪히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문득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아왔는지.
아이의 속도보다 내 조급함을 앞세운 적은 없었는지.
나는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둘째가 놓인 환경 자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픈 엄마, 집이 곧 공부방인 상황, 할아버지 간병까지.
아이가 점점 뾰족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는 친구들과는 다른 환경을 알아가며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괜찮다"를 심어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심고 있었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챙기는 일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를 매일의 말로 빚어가는 일이었다.
어떤 아이는 실수 앞에서 금세 주저앉고,
어떤 아이는 다시 해보겠다고 일어난다.
그 차이는 능력보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습관에서 온다.
그리고 그 습관의 많은 부분은 집 안에서 만들어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던 사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주던 사람.
네 존재는 성과보다 먼저 귀하다고 알려주던 사람.
나는 둘째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었을까.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빠의 팔을 붙들고 새벽을 건너던 그 밤, 나는 비로소 알았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대단한 해결이 아니라 오래 건네진 믿음이라는 것을.
삶의 어려움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것도, 남의 마음을 붙들어주며 살아온 것도,
어쩌면 모두 그 믿음 덕분이었다. 아빠가 내 안에 심어놓은 용기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제대로 건네야 비로소 사랑은 이어진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었고, 지켜주고 싶으면서도 몰아세웠다.
최선이었다고 믿었지만, 충분히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배워야 한다. 아빠에게 받았던 그 마음을, 늦었더라도 아이에게 건네는 법을.
불안한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안심할 자리를 내어주는 법을.
나와 다른 환경에서 큰 아이를 아이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날 새벽, 아빠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밤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평생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은, 가장 약해진 순간에도 끝내 자식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