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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백맘 Aug 16. 2023

6. 어느 결혼식에서 본 부모의 빈자리

고백맘 - 이혼 안 하는 이유

엄마랑 절에 같이 다닌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이모의 전화가 왔다. 돌아가신 엄마 대신 부조도 내고, 꼭 와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10개월 된 둘째를 아기 띠에 매고, 피곤한 신랑 대동해서 결혼식에 갔다. “야야, 신부가 '고아'라서 손님이 없다네. 신부 측 자리에 가서 좀 앉아라.” 이모가 부른 이유였다. 섬찟 놀랐다. 무수히 많은 결혼식을 다녔지만, 부모 자리가 빈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양가 하객 차이가 나면 보기 좋지 않으니 아들 측에서는 이 부분까지 신경 써서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신부 측 자리에서 예식을 봤다. 하객은 우리뿐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곱고 아름다운 날,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쏟아내던 신부.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몇 년 후, 받게 될 건강 이상을 예견한 듯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내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신부의 마음이 가슴까지 파고 들어왔다.


부모의 빈자리는 컸고, 품에 안긴 아이는 너무도 어렸다.      


내 삶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지켜 준 엄마. 결혼 후, 못하고 안 되는 순간 만능 해결사 ‘엄마’만 불렀고 그 울타리에 숨기 바쁜 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나약한 딸을 놔두고 세상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이듬해 꽃을 보지 못하고, 봄꽃처럼 훨훨 날아갔다.      


“언제부턴가 익숙함과 편안함에 가려져 당연시되는 것들이 있다.

내 사람의 호의도. 주어진 행복도. 모두 원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당연히 여기며 우린 살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은 누군가의 존재마저도 모두 당연한 건 없었다.”


 드라마 ‘고백 부부’에 나온 대사처럼 익숙한 듯 당연시받던 모든 것이 사라졌고,

 ‘엄마의 부재’ 그 자체만으로 삶이 휘청거렸다.      


집 앞 슈퍼를 놔두고 더 싱싱하고 싼 물건을 사기 위해 먼 길을 가신 엄마.

어쩌다 함께 한 시장 나들이는 상인과의 흥정으로 얼굴 붉힘의 연속이었고,

검은 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힘겹게 버스를 타는 우리에게 한 마디씩 내뱉는 아저씨께 죄송하다며 연신 굽신거렸다. 이런 엄마가 난 싫었다. 체면도 없는지 부끄럽고 화도 났다.

집에 와선 장 봐온 보따리를 풀어내고 다듬고, 볶고 어른들 나눠 주는 이런 삶의 연속이셨다.

7남매 종갓집 맏며느리로 수십 년 혼자 제사 지내며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형제들 뒤치다꺼리로 애끓었던 엄마. 당신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삶이지만 아빠에게 그 흔한 고생한다는 말 한번 듣지 못했다.


 너거 못 버려서 살았어.”

말 안 듣는 우리에게 같은 말만 허공에 대고 울분을 토해 내셨다.

당신보다 지키고 싶은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불평하며 또 어떤 건 당연시 받아들였다.      


“왜 이혼 안 해?” 사람들이 종종 물었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고객과의 분쟁으로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가장의 자리를 무심히 떠넘긴 신랑. 결혼 초, 엄마는 “강서방, 쟈는 잠을 많이 자야지 안 아파.” 당부했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잠 못 드는 날의 연속이었고 스트레스로 병까지 왔다. 느닷없이 닥친 가정의 위기를 아픈 몸이지만 바둥거리며 지켜냈다.


 “둘째가 어려서….”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버티고 참았다.


“부모 없인 살아도, 자식 없인 못 살아”


고백 부부의 대사에, 크면서 젤 듣기 싫었던 엄마의 18번 레퍼토리가 생각났다.

‘자식’이라는 인생의 굴레에 자신을 묶고 사는 우리 모녀의 삶이 같아서 그렇게나 많은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가녀린 어깨에 혼자 이것저것 짊어진 채 묵묵히 견디며 애태우셨을 엄마의 고단한 인생도.

나만 바라보는 불안한 아이들을 위해 눈물조차 나지 않는 억척스러운 내 삶도.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버틸 힘과 세상에 맞설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너거 엄마가 너무 고생했어.”

 얼마 전, 치매를 앓으시는 아빠가 울면서 하신 말이다.

평생 따뜻한 말 한 적 없던 아빠가 인제 와서 내뱉은 가슴에 담긴 저 말은

가부장스러운 미련한 고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생한다.”

이 한마디만 했었더라도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희생’한 삶이셨지만 ‘인정’을 받는 존재로 보람을 느끼며 조금은 마음 편하셨을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엄마는 저 말을 그토록 듣고 싶어 했고, 무심한 아빠는 엄마의 노고를 무심히 지켜봤다.


난 다짐한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보듬으며

이제는 아프지 않고 당당히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엄마로,

그리움의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엄마로 남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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