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포기'가 아닌, '최선'의 선택

치매 아빠 육아기

by 고백맘


최근, 아빠를 병원에 보낸 후 어느 것에도 집중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생활했다.

얼마 전까지 악착같이 생활하던 내 모습은 없었고, 해야 할 일 앞에 피하기만 했다.

어떤 날은 무기력하게 자고, 또 어떤 날은 멍하니 생각만 하다 하루를 보냈다.

원고 또한 쓸 말은 넘치지만 단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했고 머릿속은 뒤엉켜있었다.


입원하는 날 배고프다며 햄버거를 먹고 싶어 했던 아빠.

행여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미스러운 생각마저 드니 마음이 더 괴로웠다.

새엄마와 계셨던 13년의 시간 동안 기호 음식이 ‘햄버거’, ‘짜장면’으로 바뀌었고

우린 서로의 삶에 모르는 텅 빈 시간이 존재했다.

그것을 간병하며 조금씩 알아 갔고, 조금 빨리 지켜 주지 못함에 많이 미안했다.



그렇게 ‘공백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다행의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입원은 그야말로 혼란이었다.

삶이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이번 일도 예고 없이 훅 날아왔다.

나만 기다리고, 의지했었는데 덩그러니 남겨두고 온 죄책감에 끙끙댔다.


급기야 면회 오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 채 아빠를 보러 갔다.

내 모습은 마치 우는 아이가 걱정돼 일을 멈추고 달려가는 엄마였다.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아빠를 보니 마음이 더 무너졌다.


“환자에게 안전한 곳은 여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문을 나왔지만,

안심하지 못했다.


‘이게 최선인가?’라는 물음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날을 보냈다.

내가 내린 결정이 향후 이어질 아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시간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치매 조부모를 간병하며 쓴 책, 김달님 작가의 ‘작별인사는 아직이에요’에서

내 마음 한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필요한 건 믿음이었다. 나쁜 결정이 아닐 거라는 믿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것이라는 위안,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곧 안정될 거라는 믿음."


나의 선택을 믿어야 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아빠에게 전달돼 빨리 안정을 찾고

갑자기 나빠진 병이 조금 멈추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포기가 아니라 병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시간이 빨리 흐르길 기도했다.





며칠이 지나, 내 어깨에 지워진 짐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딸아이는 몇 달 사이 살이 찌고 2차 성징도 눈에 띄게 변했지만

아이의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할 일 잘하고, 입 댈 거 없는 든든한 딸이었다.


때마침 학교 상담 기간이라 담임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키울 수 있냐며 자신의 아이를 늦게 낳아

여기 공부방에 보냈어야 했는데라고 우스갯말을 하시는 선생님과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다.

엄마가 바빠 잘 챙기지 못해 혼자 마음을 삭이는 일도 많을 거라며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선생님의 전화는 힘든 시기에 견딜 단비 같았고, 잘 버텨주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이 안도의 마음이 그리 얼마 가지 못했고,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엄마가 안심했던 순간, 아이는 몸, 마음이 자라는 시기를 겪으며 혼자 성장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초경을 시작했지만,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었다.


“왜 이야기 안 했어?”

“힘들어 보여서 말할 기회를 놓쳤어.”

방으로 조용히 데리고 들어가서 말없이 아이를 안아 주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곤, 주변을 찬찬히 훑어봤다.


작아진 옷들, 늘어진 양말, 속옷들, 작은 운동화. 이 아이에게 내어줄 틈이 없었다는 현실과

'독립'이라는 말로 밀어내며 관심조차 주지 못한 마음에 절망했다. 난 또 때를 놓치고 있었다.


“피 보니 겁 안 났어?”라고 물으니 딸아이는 별일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작년에 엄마 수술하러 갔을 때는 진짜 무서웠어”라는 말을 툭 던졌다.

이 아이는 어떤 상황보다 ‘엄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돌보며 지쳐가는 엄마 곁에 한 아이가 서 있다.

아픈 엄마 걱정에 처음 겪는 몸의 변화도 숨긴 아이.

엄마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말간 얼굴을 하고 웃는 아이.

지켜 줘야 할 아직은 작은 내 아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를 보살피며, 무너진 삶의 균형을 맞출 시간이었다.


아빠에게 마음속 편지를 보내본다.


‘당신이 절 지켜줬듯이, 이제는 제가 당신을 지켜 줄게요.

잊으면 잊히는 대로, 세상에 대한 원망 다 거두시고,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세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제가 다 기억할게요.

곧 괜찮아질 거라 믿어요. 빨리 나와 셋이 햄버거 먹으러 같이 가요.’




2년 전에 쓴 글이 브런치 서랍에 있어 수정 없이 올렸다.


아빠를 병원에 보내고, 2년간 멈췄던 나의 생활들..

이 글을 읽어 보니, 딸아이의 사춘기가 이해되었고, 많이 미안했다.

10년 전부터 사춘기를 기다렸지만 인생의 파도에 밀려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주지 못한 엄마.. 독립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많이 사랑하며 살자.


작가의 이전글22. 몇 개의 점을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