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춘기 딸에게

사춘기를 10년 전부터 기다린 엄마가

by 고백맘


사랑하는 딸에게



하하!

드디어 올 것이 왔네!

엄마는 10년 전부터 이날을 기다렸어.

네가 태어나고 오빠와 전쟁 같은 사춘기를 겪으며 '오빠처럼 키우지 않겠다'라고 굳게 다짐했어.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내가 알아서 할게' 하며 방문을 닫고 쾅 들어가는 오빠를 보며,

어린 널 안고 많은 눈물을 쏟았었어.


엄마가 울고 있으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며 '울지 마, 울지 마' 하던 어린 네가,

이제는 네 별명 '툭 덕'처럼 엄마와 감정 싸움하는 사춘기 딸이 되었네.

엄마는 이런 날이 올 거라 미리 준비했기에 당황스럽지 않고,

툴툴대는 네 모습이 귀엽기조차 해.


그러니 이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는 걸 알고, 이제부터 엄마 이야기를 잘 들어봐.


오빠는 첫 손자라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초보 엄마였던 엄마는 아이 키우는 일 자체를 힘들게만 받아들였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엄마가 되었고, '힘들어~'를 입에 달고 살았지.


그때는 엄마 일을 대신해 주는 할머니가 계셔서 철부지 딸로 지내며, 그 울타리에 숨기 바쁜 엄마였어.

그렇기에 사랑으로 대하기보다 뾰족한 감정을 드러내며 공부에만 집착하고 잔소리만 해대는 엄마였지.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와의 사춘기 전쟁은 당연한 수순이었어.


강요하는 엄마, 도망가는 아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면, 내 마음 나도 몰라 방황하고 헤매던 아이가 바로 오빠였어.


꿈도 목표도 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떠돌던 아이.

그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라 억울했고 답답했지만,

여러 육아서를 보고 또 그때부터 닥친 여러 시련을 겪으며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어.


오빠는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할 애착에 문제가 있었고,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시기에 여러 집안 사정까지 겹쳐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채 사춘기를 보냈어.

그렇기에 엄마는 너를 다시 키우며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세상에 태어나 관계를 맺는 첫 번째 사람인 엄마에게 받는 '온전한 사랑과 단단한 애착'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것을 지키기 위해 '절대 화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 무작정 이끌기보다 네가 원하는 대로

'기다려주겠다'는 엄마의 원칙을 세웠어.


그리고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헤쳐나갈 '단단한 정신'과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어.

엄마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제껏 살던 방향과 다른 정신으로 살기 위해 애썼어.



20개월까지 밤마다 잠투정하며 우는 널 안고 나긋한 목소리로 달랬고,

네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엄마는 기다려주고 따라다녔어.

책을 읽어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집 앞 산을 오가며 자연에서 뛰어놀게 했어.

때로는 고집을 부렸지만 한 번씩 겪는 시기라 생각했고,

힘들어도 자식을 키우며 자신의 모난 마음을 깎는 거라 생각하며 견뎠어.


어린 시절 너에게 쏟은 엄마의 사랑과 정성을 네가 기억하지 못해 아쉽지만,

네 몸과 마음 곳곳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해.

엄마는 너를 키우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제일 자랑스러워.

그래서인지 너는 부드럽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남과 잘 소통하는 아이로 자라주었어.


학교에 들어간 후 1년에 한 번씩 큰 소리가 오가는 여느 모녀 사이에 있을 법한 다툼은,

네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풀어내야 알아차리는 엄마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어.

너와 내가 익숙한 듯 당연시 주고받는 '사랑해'라는 말은 우리에게 감동의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상황을 모면하고 대충 얼버무리려고 해서 미안했어.


이미 넌 상처받은 후였고 엄마는 사과했지만, 이것 또한 네가 이해해 줄 거라 믿었어.

엄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너였으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던 엄마는 그늘진 너의 얼굴과 마음이 보여도 헤아려주기보다 피하려고만 했어. 이제는 사춘기 막바지에 든 너를 보며 더 피할 수만 없어서 이렇게 변명 같은 편지를 쓰게 되었어.



네가 태어난 후 엄마가 두 번 수술하고, 여유롭지 못한 집안 사정,

이번에는 할아버지 치매까지 겹쳐 어린 나이에 넌 참 많은 일을 겪어야 했어.

첫 수술 때는 주위에서 물려받은 옷만 입혀서 미안한 마음에 수술 전날 비싼 코트를 사주고,

식당에서 주는 풍선으로 너의 마음을 달랬어.

너는 뛸 듯이 기뻐하며 온 곳을 쫓아다녔지만,

그다음 날부터 엄마와 처음 떨어지게 되니 열병을 앓았고,

'내가 아프니 너도 함께 아프구나' 생각해 기운을 냈어.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3살의 너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했지.


2주 만에 다시 만났을 때 숨을 쉬지 못하고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널 안으며,

나는 나의 엄마처럼 일찍 죽지 않고 너와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소망했었어.

그래서 4살부터 등산하고 함께 운동하며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했어.



또, 너는 10년 만에 엄마의 재수술을 지켜보며 힘든 시기를 겪었어.

기차역에서 만났을 때 품에 안겨 펑펑 우는 네 모습을 보며,

건강하지 못한 엄마라서 서러움만 안겨주는 것 같아 또 미안했어.


서로의 안타까움도 잠시, 작년부터 예민하고 까칠한 사춘기 소녀가 되어가는 널 지켜보며 오빠처럼 그저 그런 시기를 보내는 거로 생각했어. 상황이 좋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올라오는 건 당연하고, 이때를 대비해 단단하게 키우려고 노력했기에 걱정을 조금 미뤄두었지.


오빠 때는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어느 순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오빠도 엄마도 당황하며 많이 힘들어했기에,

너에게는 학습이며 생활 모든 면을 스스로 찾아가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었어.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길거리를 떠도는 엄마가 제일 힘든 상황이었을 때,

너는 경시대회 나가서 지역 1등, 전국 은상을 탔어.

엄마의 두 번째 원칙인 '정신력과 마음의 힘'이 발휘된 순간이었고,

이때를 기다리며 준비했는지 몰라.

모든 상황이 네 편이 아닐 때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고,

그럴 때 받은 큰 상이라 더 기뻤어.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유선이는 더 강한 아이다"라고 말하는 학교나 학원 선생님의 말은

너를 키우며 지켜주고 싶었던 '단단한 마음과 강한 정신'을 확인받는 말이기도 했어.


작년부터 치매 할아버지를 함께 간병하며 엄마 곁을 든든히 지켜줘서 감사했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할아버지가 많이 기특해하셨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덕담까지 하셨지.


넌 힘든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이겨내는 엄마의 모습을,

또 할아버지의 그 말들을 꼭 기억하고, 엄마가 줄 수 있는 마음의 유산은 이것이라 생각해.


그리고 이제는 잘하든 못하든 네 몫이야. 엄마는 여기까지 최선이었고,

너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고 생각해.


이제는 지켜볼 거야.


네가 당연시받았던 게 무엇이고,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생각하며 생활하길 바라.


어느 길을 가는 게 더 나은 길인지 그 판단은 네가 하는 거야.

조금 돌아가도 멈추지 않고 간다면 목적지에 분명 닿을 거라 생각해.

바꿀 수 없는 상황을 탓하며 살기보다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노력하며 성장하는 네가 되길 바라.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3살의 어린 너는
세상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며 밝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고,


오늘을 기억할 13살의 넌
감사함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불평하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들에서 갈등하는
까칠하고 예민한 사춘기 소녀라는 걸 잊지 마.


네가 만들어갈 23살의 너를 응원하며,
함께 추억할 수 있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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