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나의 거울

시절 인연에게

by 고백맘

사람은 평생 '내가 만든 나'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이 비추는 나'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살아간다.

그 가면이 얼마나 어색한지, 그 거울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나의 가면과 너의 가면이 부딪히고,

나의 왜곡된 거울과 너의 왜곡된 거울이 서로를 어지럽게 비추면서 말이다.



그런데 운명은 때때로 우리가 쓰고 있던 가면을 난폭하게 찢고, 들여다보던 거울을 산산이 깨뜨린다.

그 순간 우리는 깨진 파편 속에서 처음으로 내 얼굴의 민낯을 본다.

화장도 표정도 사라진, 상처 난 채로 일그러진 날것 그대로의 얼굴을.



나는 그 민낯을 마주하는 끔찍한 고통을 8년간 두 아이를 맡겨온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보았다.

처음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고, 내 거울을 깨뜨린 상대를 원망하며 탓했다.



하지만 고통의 끝에서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싸우던 상대는 사실 내 민낯을 비추던 또 하나의 거울 조각이었고,

내가 미워했던 그 모습 속에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그림자가 겹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돌보던 사랑했던 아이들.

좋았던 엄마들과의 관계가 끝났을 때, 그 이별은 오래도록 아팠다.



처음 만났을 때의 반가움, 아이들을 아꼈던 마음, 함께 웃던 기억들.

그리고 떠난 뒤 들려온 서늘한 말들로 가슴이 베이는 듯 억울했고,

미움과 원망으로 잠 못 이루었다.

그런데도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모질게 끊어내지 못했고, 그런 나를 또 미워했다.



이유를 몰라 헤매던 끝에, 나는 내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얼굴의 상처와 그림자까지 끌어안자, 비로소 한 뼘 자랄 수 있었다.







말의 칼날

양귀자의 『모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서슬 퍼런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며,

관계가 한순간에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이해했다.

그래서일까. 8년의 세월이 한순간 재처럼 흩어졌고,

나가며 남긴 말들은 내 등 뒤로 차갑게 꽂혔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말이 의도와 달리 타인의 가슴에 비수가 되듯,

그들의 말 또한 내 말의 그림자를 되비춘 거울이었다.

내 등 뒤에 꽂힌 칼은, 내가 과거에 휘둘렀을지 모를 직설의 칼날이 타인의 등에 어떻게 박혔는지를 되돌려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선의로 포장했을지라도,

누군가에게 남겼을 모든 아픔의 총합이 어느 날 가혹한 회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들은 마치 내 삶에 남아있던 말의 빚을 계산하듯 등장한, 혹독한 심판관이자 동시에 스승이었다.





돌아보면 가졌던 좋은 시간은 이 수업을 치르기 위한 선급금 같았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봤지만, 마지막에 남은 빚은 바로 말의 빚이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칼을 쥔 사람의 힘뿐 아니라, 칼에 베인 사람의 아픔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날카로운 솔직함은 관계를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면,

언제든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솔직함과 배려 사이,

진실과 자비 사이의 간격을 재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나를 가르치러 왔고,

가장 고통스러운 수업을 통해 마침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들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너희 덕분에 내 말의 칼날을 알았다. 너희의 소임은 여기까지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






인연을 보낸다는 건 '잘 잊는 법'이 아니라 '제자리에 돌려놓는 법'이라 한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할 때, 우리는 "내가 부족해서"라며 자신을 탓하곤 한다.


그러나 진실은 종종 이렇다.

"우리는 그때의 도구로, 그때의 힘으로, 그때의 온기로 최선을 다했다."

그 '최선'을 존중해 줄 때, 비로소 다음 계절을 맞이할 힘이 생긴다.


바람이 분다.

꽃은 흩어진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완성이다.

떨어진 꽃잎은 흙이 되어 다음 꽃을 돕는다.



그처럼, 한 인연의 끝은 다음 인연의 시작을 위한 거름이 된다.

나는 이제 그 집착을 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려 한다.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온전히 존중함으로써 단단해지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순간의 꽃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별의 바람이 불어올 때 담담히 문을 열어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