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암 환자, 아빠는 치매
엄마가 돌아가시고 10여 년간 함께 살던 새엄마도,
아빠의 병이 깊어지자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10년의 세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애쓴 마음들,
견뎌낸 정들, 함께했던 계절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져 버렸다.
폭력과 망상이 일상이 되는 치매 앞에서 사랑은 무너지고, 정은 달아나고,
남은 건 고통뿐이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떠나는 게 당연했지만, 남겨진 사람의 마음엔 깊은 멍만 남았다.
아빠는 이별과 딸(나)의 재수술이라는 연달아 터진 충격에 크게 흔들렸다.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치매 환자에겐 치명적이었다.
급속도로 나빠져 밤마다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아빠의 마음 안에는 큰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비록 병이 기억을 지우고 현실을 왜곡시켰지만,
이별과 딸의 재수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충격은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 인지능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현실과의 끈마저 점점 사라지게 했다.
병은 아빠가 헤매는 밤거리의 그림자만큼 깊어져 갔다.
첫 번째 수술 후, 회복할 틈 없이 생계를 떠안아야 했고,
두 번째 수술 후에는 나를 낳아준 아빠가 5살 무법자가 되어 내 품에 안겼다.
회복이 필요한 몸으로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할 시간은, 현실 앞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빠는 더 어른의 틀도, 부모의 무게도 지키지 못하고 내 품에서 고함지르고 울고 떼쓰는 아이가 되었다. 경찰을 불러야 하는 일이 생겼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온 동네를 뒤져야 했다.
돌봄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친구들에게까지 병의 영향이 미쳤을 때는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모든 비난과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말려도 듣지 않는 아빠를 버스 정류장에 두고 멀리서 지켜보는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졌다.
위치추적 앱을 켜고 버스 뒤를 쫓을 때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너무 지치고 너무 아파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위치추적 앱 하나에
온 마음을 걸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빠를 놓친다면, 내 아빠도, 내 죄책감도,
내 인생도 함께 멀어져 버릴까 봐 그렇게 숨이 막혀왔다.
다 큰 어른의 눈물을 닦아야 했고, 길 잃은 노인의 망상을 견뎌야 했다.
사고라도 날까 봐 손을 꼭 잡아야 했고, 밥을 먹이고 폭언을 삼키며,
딸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 나의 존재를 거꾸로 살아야 했다.
늦둥이를 낳아 남들보다 육아 기간이 길었던 터라,
이제야 더 이상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심하는 순간, 인생은 어김없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아빠를 돌보는 그 시간들.
그것은 단순한 효도도, 헌신도 아닌, 인생이 뒤바뀌는 '존재의 반전'이었다.
주위에서는 만류하며 요양원을 권했지만, 나 자신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6학년인 둘째를 데리고 30분 거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양쪽 집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몸부터 지키셔야죠. 회복이 우선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도 부모잖아요. 그 정도는 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30분 거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쓰나미를 안고 오가는
그 마음은 모를 것이다. 가는 길은 '책임감'이었고, 돌아오는 길은 '무너지는 죄책감'이었다.
힘들 때 생활비를 보태주시고 도와주신 그 빚을 이제 갚을 차례였다.
그 은혜를 갚는 방식이 이토록 아프게 끌어안는 간병이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의 기억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져 갔지만,
내 기억 속 아빠의 사랑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 사랑이 지금 내가 아빠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산책하는 일상.
이 모든 순간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에 간절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치매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 기억하는 것을 내일 잊을 수도 있고,
오늘 할 수 있는 말을 내일 못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전부였다.
간병은 힘들었다.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했고, 내 인생이 멈춰버린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엔 평안함이 있었다.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이렇게라도 되돌려 드릴 수 있다는 것.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나에게 이 간병의 시간은, 아빠에게 받은 한평생의 사랑을 갚아드리는 마지막 기회였다.
힘들어도, 아파도, 이 시간만큼은 놓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빚을 갚으며,
이별을 준비할 시간까지 선물 받았으니까.
간병은 단지 누군가를 돌보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안아주는 시간이었다.
아빠를 향한 오래된 감정들, 감사했던 시간들,
멀어졌던 거리를 하나씩 돌아보고 마음속에서 정리해 가는,
그리고 되갚으며 마지막엔 놓아줄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어느 새벽.
한방에선 아이가 울고,
부엌엔 밥솥이 돌아가고,
엄마의 기도 소리가 들리던 어느 평범한 새벽.
눈물겹게 그리운 그 '과거'의 시절.
드라마 <고백 부부>를 보며,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그렇게 눈물을 쏟았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밤이 있다.
스탠드 켜진 밤.
주무시는 아빠.
공부하는 아이.
잠 못 드는 나.
그 모든 것이 내가 지켜내야 할,
'지금, 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