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밥 한 끼의 기적

깊은 회복의 시간

by 고백맘

내가 견뎌온 계절은 혹독했다.


한여름 햇빛 아래 말라가는 나무처럼 늦여름 태풍과 유난히 긴 가을을 거쳤다.

겨울이 끝났는데도 눈발은 자꾸 내렸고, 햇살은 들지 않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밖은 스산한 바람뿐이었다.

지난 2년은 혼돈과 침묵, 외로움이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마치 아무리 기다려도 봄은 안 오는 것 같았고,

무언가를 해도 자꾸 허공으로 흩어지는 느낌.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잘못한 걸까?” 하는 자책만 늘어났다.


아이들의 지독한 사춘기를 한 명, 한 명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봤지만 지쳐 무력감마저 들었다.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아이들을 향해 “해 봐.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수없이 내뱉으며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시간을 견뎠다.


누구 하나 무너지면 그 무게를 고스란히 끌어안으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부서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동네 사랑방’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 한 명이라도 잘 키워보고 싶은 나의 포부가 담긴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 아이도 나와 같이 지쳐갔다.

10년 전부터 사춘기를 준비한 엄마였지만,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딸아이의 그 거친 외침은,

고집스러운 엄마 밑에서 기죽지 않기 위한

가장 건강한 내면의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소리를 내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의 시간, 체력, 영혼, 꿈, 아이들.

이 모든 걸 갈아 넣은 이곳에서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아빠를 버린 새엄마를 용서하고,

떠난 아이들의 그리움을 털어내며.

그리고,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써야겠다고.


그렇게 슬픔으로 묻어버렸던 다짐과

기꺼이 감당했던 마음,

사랑으로 버무린 분노를 조금씩 내려놓을 때였다.



바로 그 무렵, 딸아이가 경시대회를 나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 내뱉은 첫마디에,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 미안해."


그다음 말이 나의 심장을 울렸다.


"엄마...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


그 순간, '이별의 아픔'을 정리하고

'나를 위한 시간'만 생각했던 다짐이,

아이의 그 따뜻한 한마디에 부끄럽게 녹아내렸다.

내 아픔에 갇혀,

아이의 이런 속 깊은 마음을 보지 못했던 '고집스러운 엄마'였다.



딸아이를 껴안으며,

누구보다 애쓰고 살았던 나를 껴안아 주었다.


“너 힘들었구나.”


마치 나에게 전하듯 한마디 건네는 말에 아이는 눈물을 쏟았다.

너무 오래 너무 깊게 나도, 너도 혼자서만 싸워온 시간이었다.


“괜찮다.”

“고생했다.”


그 말 한마디에 다음날부터 아이는 웃음을 되찾았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기적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딱 지금처럼.

울컥하는 순간 하나.

움직이는 마음 하나.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는 말 한마디.



그리고, 이제야 나는 안다.


지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와 손을 꼭 잡고 밥 한 끼 먹는 것이라는 걸.


그저 둘이 마주 앉아

“오늘은 뭐 먹고 싶어?”하고

묻는 그 평범한 순간에,

아이 마음속 응어리가 툭 하고 풀릴 수 있다는 걸.


이 밥 한 끼가 세상에서 깊은 회복의 시간이자,

가장 위대한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