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옷을 만들면서 하는 생각들.
나는 어렸을 때 파란색을 가장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엄마가 학교 갈 준비 하자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동네 문구점에 갔다. 문구점은 학교 책가방부터 실내화, 배드민턴 채, 멜로디언, 공책, 장난감과 과자까지 전부 다 파는 만물상점이었다. 엄마는 나를 가리키며 만물상점 아주머니에게 학교를 입학한다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알아서 물건들을 곳곳에서 하나씩 꺼내기 시작하셨다. 연필, 공책 등등 물건들이 점점 계산대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실내화도 필요하죠?라고 말하고는 선반에 켜켜이 쌓인 실내화 더미에서 하나를 끄집어내셨다. 아주머니 손에 들린 건 하얀 실내화의 앞코가 분홍색 고무로 덧대어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옆에 있는 앞코가 하늘인 실내화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당연하게 분홍색을 건네는 아주머니와 당연하게 분홍색을 건네받은 엄마의 반응에 선 듯 하늘색으로 달라는 말을 못 했다. 그렇게 나는 분홍색 책가방을 마무리로 학용품을 모두 분홍색으로 맞췄고, 나는 이렇게 된 이유를 학교 가고 나서 알게 되었다. 모든 남학색은 하늘색 실내화, 여학생은 분홍색 실내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도 모두 같은 만물상점에서 샀는지 모양도 비슷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친구들의 학용품에는 다른 색도 섞여있고 나만 유난스럽게 분홍색으로 깔맞춤이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나는 눈치껏 이것이 학교 규칙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래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1학년 2학기,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작 실내화에 깜짝 놀랐다. 내 뒷자리에 앉은 여자아이의 실내화가 연보라색이었다. 흰색에 보라색을 떨어트린 야리야리한 연보라색이었다. 나는 시간이 멈춘 것 마냥 그 아이의 실내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도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꿈을 꾼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아이도 자신의 실내화 색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얼마 안 가 다시 분홍색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 색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큰 수확이었다. 내가 파란색을 사용해도 된다. 그리고 그동안 파란색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해 한이라도 풀고 싶었는지, 나는 점점 내 주변은 파랗게 물들였다.
엄마가 자연스럽게 분홍색 학용품을 사주려고 하면 나는 파란색으로 냉큼 집어 들었다. 옷도 파란색을 입고 싶어 했었고, 놀이터에 가면 파란색 블록만 밟았다. 심지어 과자도 포장지에 파란색이 들어간 것들로 골랐다. 막상 먹어보면 내 입맛에 맞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것 같았지만, 흔쾌히 파란색들로 사주었다.
한 번은 여동생이 크레파스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크레파스의 케이스 색상이 파란색이라며 마음에 안 든다며 울기까지 하는 거였다. 엄마는 크레파스를 나한테 주었지만 나는 이미 크레파스를 쓸 일이 거의 없는 고학년이 되었기에 큰 쓸모는 없었다. 하지만 주는 데 거절한 이유가 있나, 이쁘기만 한테 울정도 인가라고 생각하며 건네받은 크레파스를 빤히 보았다.
반투명한 파란색의 플라스틱 케이스 안쪽에 반듯하게 조각되어 있는 12개의 크레파스들이 비쳐 보였다. 뚜껑을 딸깍 열어보니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동생이 싫다고 울었던 파란색과 하늘색이었다. 나는 오른손 엄지로 고정된 하늘색 크레파스의 밑부분을 꾹 눌러 꺼내 잡았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파란색 크레파스를 꾹 눌러 꺼내 들었다. 양손에 있는 크레파스를 내 눈높이를 맞춰 들고는 빤히 구경하였다. 반듯하게 각지게 조각되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면들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들이 부드럽게 둥글게 다듬어져 있었다. 크레파스를 감싸는 종이도 틀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잘 감싸고 있었다. 모양도 색도 완벽했다.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파란색을 좋아했다. 평생 파란색만을 좋아할 것 같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내가 다른 색도 좋아할 기회를 준 것은 원단이었다. 원단은 신기한 물건이다. 같은 염료를 사용하고, 같은 염색방법으로 물들여도, 혼용률과 직조방법, 가공처리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같은 원단인데도 원단 결이 어디로 향했는가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인다. 하늘아래 같은 색이 없다고 했던가, 원단도 그렇다. 나는 이 미묘한 차이가 재밌다.
또한 옷은 색의 조합도 아주 중요하다. 오직 파란색만 좋아하던 나에게 색상 조합은 아주 큰 세계였다.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하나 둘 배워보니 다른 색들의 묘미를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색이 하나 둘 늘어갔다. 그리고 시즌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세상에서 점점 늘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복들이 많아지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었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서는 끝에 있는 검은색까지 좋아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돌고는 이제는 흰색이다.
하얀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 것은 즐겁다. 새하얀 전지가 구김 없이 펼쳐져 있고, 새하얀 원단이 반듯하게 다려져 있는 이미지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넓은 하얀색을 따라 내 마음도 따라 조용해져 간다. 넓은 원단의 조직 모양을 찬찬히 뜯어본다. 가느다란 실들이 반듯하게 얽혀서는 커다란 바탕을 만들었다. 실들을 따라가다 끝을 만나면 이제 옷을 만들어본다. 원단으로 오리고 이어서 만든 형태는 속속들이 들어있는 빛과 그림자를 따라 달라지는 음영에 의해 너무 예뻐 보였다. 실도 같은 흰색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모양의 실의 땀수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이고, 원단 한 겹과 두 겹이 겹쳐진 곳의 색이 다른 것이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조용히 혼자서 할 일을 다하는 느낌이다. 나에게 흰색은 가장 조용한 색이다. 그래서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