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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바미 May 24. 2019

현실 도피성 취미생활

나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한창 고민이 많았을 무렵 답답하고 우울했던 그때의 난 답을 찾기보다는 도망가기를 선택했다. 현실을 직시한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잠시 현실로부터 도망간다 한들 크게 달라지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나의 도피처는 취미 생활이었다.




기타를 치다. (faet. 짧은 손가락)



 짧은 손가락으로 기타 코드를 연습할 때면 다른 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내 손가락은 왜 이리 짧은지, 이게 유전인지 따위의 해봐야 쓸모없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딱히 재능은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잘할 필요도 없고 필요 이상 노력할 필요도 없는 즐기고 싶은 그 마음이 좋았다.



 손가락이 굳어있어서 기본 코드인데도 운지가 되질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하나씩 연습하다 보니 한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첫 곡은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였는데 기본 코드 3개로 이루어진 곡이었다. 흥얼흥얼 거리며 3개의 코드를 반복해 쳤다.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 멋진 일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기타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일을 마치고 기타를 연습할 시간을 기다렸다.

 취미가 생긴 이후 내 상황이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불안한 미래도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무언가에 집중하는 나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인간이 가장 행복을 느낄 때는 무언가에 몰입할 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쓸데없는 일 하지 말라고?



 29살이었다. 기타를 취미로 삼았던 때가. 유학이 실패로 끝나고 학교 선배의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주었지만 뭐 때문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항상 무계획한 인간이었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계획을 항상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계획이란 걸 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진로를 이탈하는 일이 생겼고 지금 당장 필요한 일 보다 다른 일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였다.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니 할 일에 집중해.”

 하지만 나는 평생 쓸데 있는 일만 하고 살 자신이 없었다.


 

 평생의 취미



 방한 구석에 기타 두대가 세워져 있다. 먼지가 소복하다. 한동안 열심히 치던 기타는 안 그래도 좁은 방안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기타를 취미로 둔지 7년 정도 되었나? 아직도 초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결혼하고 가끔 주말에 기타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치지 않는다.

 그래도 음악을 들을 때 기타 소리가 나면 더욱 집중해서 듣는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언젠가  꼭 기타로 쳐야지 생각한다.



 언젠가는 먼지를 닦아내고 기타를 칠 것이다. 손이 많이 굳고 손끝에 굳은 살도 없어져서 손가락이 아프겠지만 처음보다는 쉽겠지.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기타를 보면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기타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대의 마지막에 나의 도피처가 되어준 기타는 언젠가 다시 나의 친구가 되어 줄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읽지 못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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