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이제는 전쟁이다
해외 MBA 합격 후 약 한 두 달 뒤로 퇴사 날짜를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난 6.5년 동안 나의 청춘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현 직장을 떠난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직장 동료, 상사, 선배, 그리고 많은 거래처 사장님들이 이제 꽃 길만 걸으라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줬고, 그렇게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퇴사 후 곧장 한 달간 동남아 3개국으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이렇게 몇 주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야 내가 백수라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내 통장에 돈이 들어 올 일이 없는 것이었다. 되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나갈 일만 남았다.
남들 다 부러워하던 퇴사 여행 중,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나처럼 영어도 능숙하지 않고, 미국 경력도 없는 애가 과연 미국에서 취업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국에 리턴한 Top MBA 졸업생들도 이렇게 많은데? 그렇다고 뭘 준비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 나의 무지함이야 말로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곧 현실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영어가 잘 안 들려서 등에 식은땀이 흐르거나 동기들과의 스몰토크(Small Talk)가 부담스러워서 화장실로 도망가 버리는 것쯤이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개인 중고거래 웹사이트를 통해 중고차를 구입/등록하고, 혼자 완제품 가구 실어 나르고 조립하는 것쯤이야 리쿠르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기 첫 달부터 기업 채용 설명회 및 네트워킹 이벤트가 내 캘린더를 가득 채웠다. 오전 9시부터 늦은 오후 사이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면 간단하게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후, 부지런히 채용설명회에 다녔다.
항시 차 안에는 정장과 구두, 코트가 대기 중이었다. 밤 9~10시 사이에 집에 들어오면 이때부터 새벽까지 학교 과제를 하고, 주말에는 보통 팀 프로젝트 미팅이 서너 개씩 잡혀 있었다.
내 목표는 "MBA 합격"이 다가 아니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해외 현지 취업"에 있었다.
외국인이 현지 기업에 취업하는 데 있어 MBA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아무리 Top MBA일지라도 현지 취업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보다 몇 배로 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첫 3개월 동안이 가장 힘들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느냐고?
그때쯤에는 이러한 살인적인 스케줄에 많이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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