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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Apr 21. 2020

글 피우는 사람 꽃
기다리는 마음으로

도서출판 이팝은

 벌써 3년입니다. 지진으로 일그러진 일상은 겨우내 웅크리다 봄을 맞이합니다. 무너진 풍경 앞에 뒤틀린 심사를 어쩌지 못하고 발 구르기 몇 번을 하다가 흥해 향교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시멘트로 다진 주차장 옆에 하마비가 새삼스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공자왈 독경 소리가 세어 나오던 향교를 어슬렁 거리면서 잠시 추억에 잠겨봅니다. 명륜당과 임허사 사잇길을 비집고 나오니 너른 산머리가 반갑습니다. 북천방 너머 양백 들판을 둘러볼 여유가 생깁니다. 숨을 깊게 들이켜 코 끝에 찌르르 닿는 찬 공기로 배를 채우자 번잡하던 머리 속이 투명해집니다. 이팝나무를 마주하고 고개 들어보니 시린 눈 끝에 뜨거운 밥풀꽃이 매달립니다. 그리움과 헛된 믿음이 범벅이 된 채 삐쭉 심술이 올라오다가도 한없는 사무침에 괜히 나무 한 번 쓰다듬어 봅니다. 글쟁이가 신선놀음하는 시간이 도시의 속도와 반비례 합니다. 무위의 시간 속에서 가난한 고향을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시선이 동네에 머물자 가족이 스칩니다. 책 만들겠다는 우격다짐 때문에  부모님의 주름에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괜한 흰 소린가 싶었겠지만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됐습니다. 작정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바다를 건너고 비행기도 탔습니다. 기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탑니다. 빈 손이지만 발에 땀이 찹니다. 몸을 움직여 도시의 속도를 쫓습니다. 지방에서, 그것도 책을, 누가 읽고, 누가 사줄 것이며, 판로는 어쩌고, 사업 자금은 얼마나 있는지, 투자처가 있는지, 어떤 장르를 어떤 독자를 타겟으로 제작하겠다는 것인지, 경험없이 하는 사업은 도박이다, 결국 출판사 하다 망한 지인 얘기에 고생을 사서하는 몹쓸 기질을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글밥을 먹고 사람 남을 일 찾다보니 여기까지다, 스스로 넋두리인듯 다짐인듯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설득이 가능한 이유를. 그런데 못 찾아서 그냥 해보겠습니다. 망했든 살아남았든 틀린 시도라기 보다 다른 시도였노라 큰 소리를 미리 쳐두겠습니다. 


  쌀은 뼈와 살을 만드는 에너지이자 노동, 생존 그 자체인 상징적 재료입니다. 밥이 주식인 문화권은 벼농사를 기반으로 공동체와 전통을 중시합니다.  도서출판 이팝은 이런 보편적 가치를 지역의 소재와 엮어 다양한 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평범한 일상도 예술이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하얀 이팝나무 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입니다. 문화적 자원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도 인문학적 상상력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씨앗이 되겠다는 각오를 담아 쌀 한 톨을 그리고 이름을 새겼습니다.

 

 종이매체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부정적인 전망에 사서 고생하는 듯 하지만 한 길 걷는 제작자와 자신의 세계를 간직한 작가, 그리고 안목 있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유감있는 세상 유머로 비트는 재주는 좀 부족해도 글밥 먹으면서 버텨보렵니다. 


 벚꽃도 지고 장미도 지고 나서야 만개하던 하이얀 꽃. 이팝나무 위로 어김없이 드리울 밥풀꽃. 그 향연이 기다려지는 것은 부연 흰 쌀밥 따끈한 온기 품고 모심던 손길따라 글 짓는 사람꽃 만나기 위함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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