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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Nov 01. 2020

주린 배는 울부짖고
빈 주머니엔 자유만

[작가의작가]09.가난 : 다시 읽은 현대 문학

 고구마 여섯 덩어리를 그 자리에서 삼킨 기분. 전후 문학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처절함을 이렇게 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범선의 ‘오발탄’을 읽고 월남 실향민의 비극을 마주하면서 괜한 상념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분단 현실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셈해야했던 극단의 20세기를 21세기에도 여전히 마주해야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한국 문학은 희망의 흔적을 의식하면서 찾아야하는 비극이 많아서 읽는 내내 먹먹하다. 근현대 문학은 내용과 형식이 식민지-광복-한국 전쟁과 분단-전후 상황 등 소용돌이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하는 까닭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황순원의 ‘카인의 후예’-하근찬의 ‘수난이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등 단편작만 살펴보더라도 ‘한(恨)’으로 아로새긴 납덩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기분이랄까. 인간성을 시험에 들게 하는 가난의 극치는 시간을 좀만 거슬러올라가도 발견할 수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중 이순신이 ‘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말똥에 섞여나온 곡식 낟알을 꼬챙이로 찍어 먹었다’고 적은 구절은 민초들의 시련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 속 첫문장과 이 부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어떤 문학작품도 배고픔을 이보다 더 처절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이범선의 ‘오발탄’은 한국전후 해방촌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만 다를 뿐, 가족의 파탄 과정을 아프게 그림으로써 ‘한’의 문학 계보를 그대로 잇는다. 치통을 앓고 있어도 치과 한 번 못가는 주인공 철호는 가난한 계리사 사무실 서기다. 어머니는 전쟁통에 미쳐 “가자, 가자”만 되풀이한다. 상이 군인인 영호는 직업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권총 강도가 된다. 여동생 명숙은 미군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양공주다. 가난 탓에 말도 웃음도 잃어버린 아내는 둘째를 해산하다가 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철호는 아내 병원비로 쓰라고 명숙이 던져 준 돈 뭉치를 들고 치과에 들러 이를 뽑는다. 맥빠진 철호는 택시를 타지만 병원, 경찰서를 오가다 선지피를 가슴까지 적신 채 뒷좌석에서 정신을 잃는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라는 철호의 마지막 대사가 아찔하다. 허무한 결말 덕분에 무력감은 배가 된다. 마지막 양심의 보루였던 철호마저 방황하는 비극적 결말은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5•16 군사정변이후 60년대 군부독재의 서막을 예고하는 듯하다. 


 자유는 가난 앞에 무력했다. 철호는 삼팔선과 해방촌의 현실을 납득 못하는 어머니를 두고 “그래도 남한은 이렇게 자유스럽지 않아요?”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충분치 않았으리라. 어느 날 영호는 술에 취해 양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가난한 형 철호에게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을 다 벗어 던지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싫어도 살아야 하니까 문제지요. 사실이지 자살할 만큼 소중한 인생도 아니고요. 살자니 돈이 필요하니 필요한 돈을 구해야죠. (중략) 왜 우리만이 옹색한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해요. 법률이란 뭐야요. 우리들이 피차에 약속한 선이 아니야요?” 철호는 치받는 영호을 어쩌지 못하고 “그건 억설이야”라며 눈을 감아버렸다. 양공주 노릇을 하는 명숙이를 향해 사람들이 쑥덕거릴 때조차 얼굴을 붉힌 채 눈을 감는게 다다. 가난 앞에선 법도 도덕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무력감에 젖어있을 때 무력과 또다른 폭력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줄이야. 


 지난 9월 아시아필름아카이브에서 주최한 영화제에서 ‘오발탄’을 관람할 수 있었던 건 뜻밖의 행운이었다. 이범선의 ‘오발탄(1959년, 현대문학 수록작)’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Aimless bullet, 1961 개봉)’으로 마주하면서 소설 속 주인공인 철호와 영호가 흑백 영화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기기묘묘한 경험을 했다. 솔직히 팝콘처럼 터지는 저화질의 원본 필름이 더 멋스럽지만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스크린 위에서 지금봐도 멋진 김진규, 최무룡, 서애자를 선명하게 만나는 재미도 한 몫했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서 ‘쨍쨍하고 간사한 게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였다.’고 묘사된 미친 어머니의 “가자”라는 한어린 외침은 상영내내 심장을 저리게 만들었다.


  영화 관람 후 현지 친구가 작품이 왜 이토록 슬프고 처절한지 물었다. 슬픔의 단계가 이보다 더 낮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도 영국,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는데 한국 만큼 처절한 슬픔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독립 후 경제적 극빈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 가난에 대한 무지로부터 부의 실체를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덕분에  ‘한(恨)’이라는 정서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자를 보여주고, 중국어 병음(hen)으로 읽어 준 뒤, 영어로 절망(despair)을 골라 다시 ‘가시밭길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절이 주절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문학이 한류의 원류였음을 덧붙여 강조하면서 말이다.


  작가 이범선은(1920~1981)이 온 몸으로 겪어낸 시절만 보더라도 왜 암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고발성 짙은 리얼리즘 문학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산업화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고,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자유를 얻었다. 더이상 가난을 얘기하지 않는 시대지만 21세기에 마주는 가난은 부와 자유와 상존하는 특이한 형태다. 이런 것이 일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리라. 


이범선의 <오발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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