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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Nov 01. 2020

이름 없는 괴물은
왜 악마가 되었나

[작가의작가]08.책임 : 과학, 가족, 법 윤리에 대한 고찰

 초록색 피부에 관자놀이 양쪽엔 나사가 박혀있고, 해진 옷을 입은 채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는 큰 체구의 괴물. 뮤지컬, 연극, 동화, 영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된 작품들이 많다 보니, 이름만 들어도 캐릭터를 바로 떠올릴 수 있어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과학자 빅터와 이름없는 피조물을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 밖에 없다. 


 총 3부로 구성된 소설은 탐험가 월턴의 편지-프랑켄슈타인의 회상과 괴물의 독백-다시 월턴의 선상으로 돌아오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이야기 속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월턴과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독백과 회상, 대화로 펼쳐진다. 1부는 월턴이 누이에게 부친 편지로부터 시작하는데 프랑켄슈타인과 월턴의 만남이 극적이다. 북극 항로 개척에 나선 선장 월턴은 어느 날 북극을 향해 달리는 이방인의 썰매를 목격한다. 시간 차를 두고 뒤쫓던 프랑켄슈타인이 빙하 위에서 간신히 선원들에 의해 구조된다. 월턴은 과학자 빅터의 과거사에 귀 기울이면서 연민과 동정을 느끼고 북극으로 가는 이유를 서로에게서 발견한다. 


 1부는 프랑켄슈타인의 자연 철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생리학에 대한 집요한 연구, 괴물의 탄생 과정, 주검으로 발견된 윌리엄, 살인자로 지목받은 저스틴의 잇단 죽음 등 과거 회상으로 요약된다. ‘생명의 움직임을 불어 넣을 능력은 있었지만 그것을 수용할 틀, 복잡한 온갖 섬유, 근육과 혈관을 모두 준비하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고생스러운 작업이 남아있었다.(1부 4장)’ 라던가 ‘그가 바로 범인이었다!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 생각 자체가 사실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1부 7장)’라는 프랑켄슈타인의 독백과 저스틴이 신부로부터 자백 협박을 받는 장면 등을 볼 때, 200년 전 메리 W.셸리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작품 속 초자연적 과학과 개연성에 기댄 법을 견고하게 엮어 낸 작가의 능력도 놀랍고 과학자의 생명 윤리와 법 윤리에 대한 화두를 끈임없이 던진다는 점에서 21세기에도 유효한 고전이다. 


 2부는 더 경이롭다. 빅터 앞에서 “내 얘기 좀 들어주오”라고 창조주의 동정과 연민, 사랑을 갈구하는 피조물의 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지능력이 껑충 성장하는 단계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다. 괴물은 산 속에서 은둔하며 빛과 배고픔, 목마름, 어둠을 느끼고 불을 경험한다. “지식이 늘수록 내 서러움은 더해만 갔소.”라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내가 떠나온 길은 빈칸”이라며 경험론적 고독한 자아, 코기토(cogito)를 자각한다. 기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드 라세 가족을 몰래 관찰하면서 계급, 부와 가난, 소유, 종교 등 공동생활을 영위해야하는  유한자, 그래서 근대 철학의 핵심인 사회계약이 필요함을 몸소 터득한다. 인상적인 것은 괴물이 읽은 책들이다. 우열을 가릴 순 없지만 연애소설 읽는 노인(작가의 작가-7.모험 참고)에서 주인공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유희를 위한 독서를 했다면 이름없는 가련한 피조물의 독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 그는 교양있는 악마일 수 있다. 몬스터의 독서 리스트는 2장 7부에서 확인 가능하다. 


 드 라세 가족을 보이지 않게 도왔지만 최종적으로 거절당한 그는 빈 집에 불을 지르고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프랑켄슈타인을 찾아 복수하기로 결심한 그는 도중에 죄를 짓고, 종국에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같은 협박을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창조주야 말로 몬스터의 불행의 시초라고 탓한다. 행복할 권리를 찾고 싶다고 설득하는데, 이건 설득된다. 그렇지만 범죄는 예외다. 생명이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므로 괴물은 비난당할 수도 없고 처벌할 수도 없다. 홀로 형성된 자아만 있지 타인과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 그저 빅터를 향한 복수와 증오만이 괴물의 존재 이유가 될 뿐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 밖에 있는 제 3의 존재를 기존의 법 질서로 재단할 수도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를 디스토피아 대신 공존에 초점을 두고 미리 오류와 예측가능한 위험을 예단해봐야한다는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작품의 인지도와 달리 작가인 메리 W.셸리는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집필 당시 20살이었다. 보수적이었던 시대 상황을 반영해 두 번째 개정본을 낼 때까지 그녀는 익명을 고수해야했다. 이름을 공개하자 평단의 혹평 감수해야했기 때문이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1797년 정치 철학자 윌리어 고드윈과 페미니스트 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산욕열로 10일ㅏ 만에 사망했다.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결혼, 네 아이를 여행 중에 읽고 항해 도중 남편 퍼시 셸리가 실종된다. 남편의 유고시집과 자신의 수필, 자전적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간다. 


 본의 아니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졌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성(姓)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처음 읽을 때는 야심찬 과학자가 자신이 만든 흉측한 괴물과 한바탕 복수극을 펼친다는 익숙한 공식대로 읽히지만, 텍스트를 다시 뜯어보면 두 주인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들이 많다. ‘한 번이라도 두 인물이 살아서 같이 있는 것을 목격한 자가 있었던가?’ ‘괴물의 존재 자체를 입증할만한 근거가 전무하지 않았나’라고. 프랑켄슈타인과 몬스터가 도플갱어(Doppelgänger :나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생물체 출처:위키피디아)가 아니었는지 말이다. 3부 로버트 월턴이 두 존재를 확인한 증인이므로 새로운 해석은 보류하고 싶다. 다시 쓰여지지 않을 영원한 이야기 속에서 들숨 같은 괴물과 날숨 같은 프랑켄슈타인이 번갈아 존재감을 내뿜을 수 있게.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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