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오한숙희
우리나라 사람이 쓴, 자폐 스펙트럼 관련 에세이는 대부분 중증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가 쓴 것이다.
나는 가끔 이 같은 책을 읽지만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한 적은 별로 없다. 때때로 위로의 손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는 소외된다. 애써 노력해도 나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가갈 수 없다. 나는 그저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돌처럼 차가워졌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또다시 동반 자살 보도가 있었다. 나중에 그 자녀의 장애가, 주위의 부러움을 살 만큼 경증이었다는 것을 알고 의아했다. 그 엄마의 맷돌은 매우 가벼울 거라는 주위의 부러움 탓에 그 엄마는 '도망치고 싶다'라고 고백할 데가 어디에도 없었던 건 아닐까.
내 아이의 경우, 경증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보통의 아이. 나는 아이를 이렇게 부른다. 보통의 아이. 여섯 살 나이에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국내에서 유명한 자폐 전문의로부터 받은 진단이었다. 자폐 기준점을 살짝 초과한 경미한 자폐. 이게 내 아이의 의학적 정체성이다. 제 입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 여전히 진행 중인 아이러니다.
“겁이 나요.”
나라도 겁이 났을 것이다.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포기하게 될까 봐 겁이 나요.”
오로지 그 차에 시선을 꽂은 채 나직한 목소리로 하는 그 말이 내 귀에 기도처럼 들렸다. 두려움을 고백하며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기도 같았다.
센터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저곳 전전하다 결국 지금의 센터를 찾은 청년을 기다리다 던진 원장 선생님의 말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외감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포기하게 될까 봐 겁이 나요."라는 말. 내게는 "주저앉을까 봐 겁이 나요."와 다름없었다. 내 진심이었다. 나는 아이의 정체가 드러날까 전전정 긍하는 겁쟁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껏 이뤄온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날아갈까 봐 두렵다. 어떤 이유든 우린 모두 소수이며 약자다.
책에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이 종종 등장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을 하게 한답시고 말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가방끈 긴 딸과, 그 딸을 어머니로 둔 손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실전 양육의 베테랑인 어머니"였다. 나는 작가의 어머니가 희나에게 남긴 유산이 "올, 잘했지."라고 믿는다.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말, 기도 같은 말, 소수이자 약자에게 힘을 주는 말.
어머니 눈에 희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올치'이고 '잘했지'였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희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올치'와 '잘했지'였다.
(중략)
희나에게 '올치, 잘했지'는 어떤 의미일까. 행위 하나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마침표? 자신이 한 게 맞는지에 대한 확인?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말에 힘입어 다음 행위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중략)
'올치, 잘했지', 이 말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다. 그렇다면 이 말을 굳이 아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올치, 잘했지'가 현재가 아닌 미래로 관점 이동을 돕는 촉매제가 된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지 않을까. 기도 같은 것이니까.
'올지, 잘했지', 이 말은 내게도 위로가 된다.
실전 양육의 베테랑인 어머니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