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이 도피처가 될 수 있을까

초4 아이의 여름(2025.06-2025.08)

by 하이리



한 달에 한 번 개인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 선생님을 기다리던 중 어디선가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는 알아듣고 일부는 알아듣지 못한 문장들. 나 또한 저렇게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올랐다. 근근이 영어책을 읽고는 있는데, 발전이라기보다는 한 걸음 퇴보한다는 느낌. 영어 몰입 교육이라도 받아야 하나? 나는 왜 지나가는 영어 소리만 듣고도 가슴이 두근거리나.


4학년이 되어 아이가 영어와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따지고보면 이게 다 학원 숙제 때문이다. 수학은 답만 찾으면 상관없는데 영어는 답이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그 골머리를 아이가 아닌 내가 앓고 있다.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여기는 모범생 엄마의 자존심이랄까? 처음으로 보낸 영어 학원의 숙제 난이도는 상당했다. 영어 소설 한 챕터를 읽고 기승전결을 정리하고 주요 사건에 대해 영작하는 일이다. 이걸 하는 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두 시간 중 10여분은 나의 잔소리, 20여분은 아이의 딴짓, 다시 20여분은 숙제에 대한 우리의 짜증으로 채워졌다. 도대체 이걸 초4아이가 하라고?


영어 숙제를 봐주다 국제학교를 떠올린다는 게 황당하지만 문득 외국에 나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마도 학원 숙제를 도와줘야 할 일은 없지 않을까? 학원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드물지 않을까? 물론 학구열 높은 한국 부모는 어디를 가든 용케 학원을 찾아내고, 결국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 생기는 일도 부지기수라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아닐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도 중학교 때 즈음 국제학교에 보내는 건 어떨까 싶어 가끔 검색을 하곤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2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이 활개 친다는 중학교를 어떡하든 피하고 싶었다. 국제학교가 뭐 다르냐 싶겠지만 학업 경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우리나라 학교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외국인으로서 아이가 가진 남다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양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우리는 외국인에게 관대한 편이다. 말실수를 해도 그까짓 거 하고 넘어간다. 아이가 만약 국제학교를 간다면 이런 특혜를 경험하지 않을까?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 아이에 대한 포용의 폭도 한 뼘 정도는 넓어지지 않을까? 만약 국제학교를 간다면, 인종차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동양인이라고 무시받지 않는 동남아로 가고 싶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캐나다, 호주, 영국과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학비는 물론 체류비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


솔직히 도피의 마음도 없지는 않다. 만약 외국에 간다면 내 앞에 산적한 여러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외롭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황당무계한 생각. 혹시나 외국에 나갈 일을 대비해, 누가 봐도 한국인인 영어 발음에도 기어이 영어로 말해보겠다고 영어 독서 모임을 한 지 벌써 3년째, 자기 계발이라는 낯간지러운 목적도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 가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계획도 없지는 않다.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와 같은 분위기가 흐르는 국제학교를 찾고 싶다. 바람 한 조각 얹어 '다양한 경험 속에서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는 분위기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상담을 기다리던 찰나의 백일몽
영어가 쏘아 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