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봄(2025.03-2025.05)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는 글렀나 보다.
4학년이 된 이후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곧바로 가는 날을 제외하고 아이는 혼자서 집으로 왔다. 아이 말을 들어보면 친구와 같이 걸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아이들 부딪힐 일도 없고 그 아이들의 엄마를 만날 일은 더더욱 없으니. 길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던 몇 엄마들과 멀어지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고개 숙일 일이 많은 엄마로서는 내심 반갑기도 했다.
며칠 전 하교 시간이 지나 A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A를 따라 자기 집 현관까지 왔는데, 아이가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것도 뒤에서 지켜보고, A가 문을 열고 집에 가려는 것도 막았다고 했다. 무턱대고 놀자는 아이에게 A는 학원에 가느라 놀 시간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아이가 끈덕지게 달라붙었단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A가 무서워했다고 그래서 한참 울었다고 했다.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 날이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아이가 도착했다. 나는 아이를 몰아세웠다. A 랑 같이 놀고 싶으면 놀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한다고,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집에 와야 한다고, 남의 집에 무작정 따라가도 안 되고, 현관 비밀번호를 보는 것도 잘못이라고, 현관문을 막아서는 건 더더욱 안 되는 거라고. "너는 왜 이런 것도 모르니?"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내 속마음은 이랬다. '이런 걸 모르니까 자폐라고 하는 거겠지.' 한바탕 눈물을 터질 것 같아 방에 들어와 가만히 앉았다. 머릿속이 까마득해졌다. 도대체, 너는, 왜, 이러는 거니?
나는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A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은 사실이 더 불편했다. 어떡하든 이 일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아이 욕은 하더라도 내 욕은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이를 보며 A에게 바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사과하고 싶다는 문자를 A 엄마에게 보냈다. 바로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고 아이는 내가 미리 알려준 대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해." 이 한 마디 내뱉은 즉시 아이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A의 엄마에게 다시 전화해 아이를 잘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 일이 끝났다. 다만 내 마음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A는 몇 년 전 발달 센터에서 수업을 같이 듣던 아이였다. 불안과 강박이 있는 아이였다. 우리는 각자의 아이가 가진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내 아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약 A가 아닌 다른 친구였으면 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라는 사람은... 오히려 A 엄마이기에 상황이 이 정도로 종료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엄마였다면 아마 문제가 더 커졌을 지도.
여기에서 가정은 필요하지 않다. 철저하게 사실만을 봐야 한다. 어찌 됐든 바쁘다고 말하는 데도 A를 따라간 아이의 잘못이 크다. 현관 비밀번호를 뒤에서 지켜본 것도, 문을 열지 못하게 막은 것도, 모두 다 내 아이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이제 가르치면 된다. 친구가 놀지 못한다고 하면 알았다고 대답한 뒤 와야 한다. 친구가 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집 앞까지 따라가는 건 안 된다. 특히 비밀번호 누르는 것을 뒤에서 쳐다보면 안 된다.
아이가 A를 따라갔던 화요일 이후, 이제부터는 화요일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기로 했다. 친구들이 대부분 학원에 가느라 놀 수 없으니 차라리 나와 산책을 하자고 했다. 오늘 같은 일이 화요일에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은 화요일 만이라도. 그 외 요일은 차차 생각해 보자.
내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치는데
이 폭풍을 잠재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럭저럭한 일상 가운데
한 번씩 마주하는 무너짐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