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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아의 느린 아이 부모 수업

written by 천근아

by 하이리





‘느리다’라는 말은 장애라는 말 대신 부모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책은 일시적으로 느린 아이와 장애 때문에 느린 아이의 사례를 제시한 뒤, 개입이 필요한 아이를 위한 치료와 훈육, 학습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발달지연 아동과 발달장애 아동을 모두 다루지만, 책의 대부분은 발달장애 아동에게 집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을 쓴 천근아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국내 자폐 분야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자폐에 대한 언급이 잦았는데,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그중 도움이 되었던 건 약물에 대한 설명. ADHD에 쓰이는 약물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일종의 각성제, 이 약물을 감각이 민감한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에게 사용할 경우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산만성을 ADHD의 산만성으로 오인해 ADHD 치료 약물인 도파민 촉진제를 쓰면 자폐스펙트럼장애 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으므로, 산만성의 근본적 원인과 문제 행동이 나타나게 하는 배경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p180


여기서 문제는 ADHD의 산만함과 자폐스펙트럼의 산만함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ADHD였다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이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때때로 전문의에 따라 각기 다른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특히 자폐스펙트럼의 경우 공존질환으로 ADHD가 따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같은 경우 약물 치료가 까다롭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약물치료를 주저하는 이유다.


현재 기준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핵심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격적 행동이나 강박, 불안, 공포, 우울, 짜증과 같은 동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물을 쓴다. 내 아이의 경우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이 심한 편인데, 일단은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훈련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있다. 학교에서 빈번하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마도 약물을 쓰는 쪽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저자는 요즘 부모들이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들, 내 아이가 ADHD인가? 자폐인가? 경계선 지능인가? 에 대해 전문가다운 조언을 던진다. 특히 자폐스펙트럼, ADHD, 경계선 지능에 대한 자가진단표는 참조할 만하다. 이를테면 언어가 늦은 아이의 경우 비언어적 행동에 어려움은 없는지, 언어 발달에 문제가 없는 경우라도 상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지 등. 이 과정에서 저자는 수줍어하는 것과 사회성 결여는 다르고, 특정 대상에 집착하더라도 사회성에 문제가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 같은 설명이 부모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부모의 불안을 부추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한 두 가지 이유로 장애를 의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한 두 가지 때문에 불안한 게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로 관대함을 잃어버린 사회를 지적하고 싶다.) 게다가 책에는 말은 잘하지만 사회적 관계 능력이 부족한 고기능 자폐(심지어 지능도 우수한), 행동으로 표나지 않는 부주의형 ADHD를 비롯해 지적장애 범주는 아니지만 학습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가 등장한다. 이처럼 발달장애라는 것은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발달장애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예상보다 많다.


결론은 발달장애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전문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부모가 발달장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은 도움이 된다. 발달장애에 해당할 경우 서둘러 개입을 해야 하는 만큼 그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치료적 개입은 발달센터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부모는 물론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성. 저자는 발달장애 아동, 특히 자폐스펙트럼 아동에게 필요한 건 사회성이므로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학습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취약점을 개선하더라도, 사회성 결함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하는 저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고. 다만 궁금하긴 하다.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지, 어느 정도로 사회적 어려움을 겪어야 사회적 결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것을 사회적 결함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아이는 아마 나처럼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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