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김영하
나의 이십 대는 김영하와 함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김영하의 글을 읽을 때 예전과 같은 설렘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겠지.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영하가 이제는 오랜 이웃처럼 다가온다. 이런 편안함이 싫지 않다.
ADHD 의심 중인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 산만하다는 그의 문장에 길게 머물렀다. 어려서부터 생활기록부에 집중력이 없다, 주의가 산만하다는 평이 빠지지 않았다. 하루 동안 하는 활동이 서른 가지가 넘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대학시절 학생심리상담센터 검사 결과가 위험해 상담사가 정기적인 상담을 권했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몇 년 뒤 작가는 아무 이유도 없이 질주하던 차의 핸들을 돌리고 싶은 자기파괴적 충동을 느꼈고, 결국 핸들을 꺾어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은 뒤 차가 멈췄다는 고백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김영하와 달리 학생심리상담센터를 들락날락거렸다. 그때 상담가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OO씨는 불행해 보여요.” 그래서일까? 나는 기괴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했다. 김영하도 그중 하나였다. 작가는 그 시절의 우울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녹아 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을 비롯해 그의 초기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유독 좋아했던 이유도 나의 우울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기괴함과 냉소를 사랑했다. 결코 질척거릴 것 같지 않은 기계적인 무엇. 나는 그 차가움에 나의 불안을 실어 보냈다.
자기파괴적 충동을 타고난 것은 불운이었지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 ‘도덕적 운’이었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을 때, 삶은 자연스럽게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악몽을 문장으로 옮겨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내 안의 어둠은 조금씩 질서가 있는 이야기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나는 핸들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비로소 주변의 세상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p182
방어기제 중 이상적인 것이 승화와 유머라고 한다. 나는 그의 작품에 이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사회성이 없었던 아버지와 ‘야로’를 바랐던 어머니, 직업 군인인 아버지 탓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해야 했던 그의 삶에 우울은 떨어뜨리기 힘든 요소였다. 그러나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찾았다.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운에 크게 좌우된다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글쓰기는 그에게 도덕적 운과 다름 없었다. 그의 말에서 겸손함을 읽는다.
신은 나에게 집중력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신 태평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이래도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 나에게는 그 마음이 있었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중략)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p72
아마 ‘도덕적 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남보다 뭘 먼저 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전에 못 보던 것이 보이길래 이건 뭐지 싶어 재미로 해보다가 그냥 계속하게 된 것들. 그 덤덤함.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십 년이 걸리든, 이십 년이 걸리든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