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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

written by 안주연

by 하이리




편집자가 묻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대답하는 방식의 책.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는 김의심 씨는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작업 환경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다, 혹시 자신이 ADHD가 아닐까? 의심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다. ADHD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했을 법한 질문과 전문의 답변이 담겨 있다. 일상적인 대화체로 SNS를 들여다보는 듯 편안하게 읽힌다.


김의심 씨의 성별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요구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김의심 씨가 실재하는 편집자인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북매니저로 명기된 네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고, ADHD를 의심하는 가상의 인물을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여성의 경우, 아동∙청소년기에 ADHD로 진단받기가 남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어렵다. 성인이 되어 불안이나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다 ADHD로 진단받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한다.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숙제나 성적을 위해 강박적으로 애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지능이 높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적은 여자아이는 더더욱 진단받기 어렵습니다. (중략) 물 밑에서 쉼 없이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해나갑니다. 이렇게 진단되지 못한 여자아이들은 그대로 성인이 되어 계속해서 물속의 발을 휘저으며 크고 작은 압박과 강박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p70
의식적인 노력을 반복하면서 성인이 되면, ADHD로 인한 문제와 어려움들을 더 노련하게 감출 수 있게 됩니다. 언뜻 보면 여전히 차분하고 사회생활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죠. 문제 일으키지 않는 여학생으로 보이던 어린 시절처럼요. 그러나 문제들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학습된 행동과 양육자의 기대, 사회적 요구 등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뿐이지요. p197


자폐스펙트럼장애가 그렇듯 ADHD는 혼자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먹먹해진다. 성인 ADHD 환자의 약 80% 에게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이 나타나고, 약 60%에게서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이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과 ADHD의 관계를 살펴보면, ASD 아동 중 ADHD 가 공존하는 경우는 30-50%, ADHD 아동 중 ASD가 공존하는 경우는 15-30%이다. 연구에 따라 이보다 더 높은 비율로 조사되기도 한다. 이 중 무엇을 주진단으로 삼을 지는 기능의 손상 정도와 치료 우선순위에 따라 판단한다.


성인기 ADHD 진단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우울해질 수도, 반복적으로 비난받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회불안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과정에서 강박을 경험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쇼핑이나 게임 중독에 빠질 우려도 높다.


겉으로 드러나는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이 없는 조용한 ADHD의 경우, 특히 여자 아이의 경우 진단시기를 놓치기 쉬운데 이럴 때 나타나는 동반 질환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여러 가지 동반 질환을 꿰뚫는 핵심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ADHD가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ADHD가 고칠 수 있는 질병도 아니고,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ADHD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ADHD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변인으로서는 ADHD를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ADHD가 나타나는 형태도 사람마다 다르다. ADHD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설명하는 수많은 조각 중 하나일 뿐이다. ADHD 가 의심 중이라면, 혹시 ADHD 진단을 이미 받았다면, 지금 당장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나씩 답을 찾아가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ADHD는 답이 될 수 없다. 나에게 맞는 삶을 찾기 위한 시작일 뿐.



ADHD가 한 사람의 삶의 궤적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ADHD가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인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니까요. p193



P.S 최근 ADHD에 대한 진단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았다. 사회적 인식의 확대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진단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성인 ADHD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증상이 존재하는 소아기 범위가 6세 이전에서 12세 이전으로, ADHD에 충족되는 증상도 6개에서 5개로, '임상적적으로 현저한 손상을 초래하는'이라는 조건도 '사회적, 학업적 또는 직업적 기능 영역에서 기능의 질을 방해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으로 완화되었다. 우리나라 분위기도 그렇고, 당분간 성인 ADHD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ADHD를 비롯한 한 신경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한국이 ADHD인이 어울려 살아가기에 가혹하고 척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타인에게 엄격하고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어디서나 높은 기준을 적용해 서로를 질책하고 조금만 권력 차이를 느껴도 갑질부터 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주 실수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산만하고 덤벙대는 ADHD인은 불량률을 높이는 고장 난 부품이 될 수밖에 없지요. (중략) 불량품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하고 기여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이 문화에 적응하고 경력도 쌓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ADHD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고치고 싶어 하고 붐이 일어날 정도로 각광을 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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