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여름(2025.06-2025.08)
아이와 클레이를 갖고 논다.
'조물조물' 그릇을 만들고 '조물조물' 음식을 만든다. 숟가락과 포크를 만들고 그것으로 음식을 찍어 먹는다. "엄마, 뭐 먹고 싶어?" "떡볶이." 아이가 떡볶이를 만든 뒤 내가 먹는 시늉을 하면 다시 아이가 묻는다. "이번에는 또 뭐 먹고 싶어?" 유치원 아이들이 할 법한 놀이를 나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하고 있다. 그래도 이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이렇게나마 아이와 함께 놀 수 있어서다. 몇 년 전이라면 아이를 앞에 앉히고 일부러 가르쳐야 했을 놀이를, 이제는 아무런 지시 없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초등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치원생이 할 법한 놀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요즘 들어 부쩍 애착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의 발달에서 부모와의 애착 형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안정된 애착관계를 토대로 아이가 발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제대로 형성된 애착관계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내가 애착을 형성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 그 모든 것을 통해서다.
농구 수업 첫 시간, 선생님과 상담하기 위해 코트에 들어섰다.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반갑게 흔든다. 그 천진함이란. 물을 마시는 잠깐의 휴식 시간, 아이가 한달음 달려와 나에게 안긴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이 말을 듣고 선생님 눈이 동그레 진다. 유치원 아이가 할 법한 행동을, 나와 키 차이도 얼마 나지 않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다시 실감한다. 아이의 사회성은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고, 어떤 면에선 그보다 어려 보인다고. 그런데 그게 뭐, 어떠냐 싶다.
대여섯 살 즈음, 아이는 나를 필요로 했지만 나의 진심까지 갈구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비슷해서 아이의 요구를 대체적으로 수용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 따위, 장난감을 갖고 놀며 핑퐁대화를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던 시기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대화 같은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오늘 누구와 놀았니?"라는 말을 아이는 허투루 흘려 들었고, 가끔 내뱉는 "혼자 블록 갖고 놀았어."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오늘 밥 맛있었어?" 정도나 "오늘 재미있었어?" 정도, 그 마저도 형식적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A와 B가 싸웠어. 벌써 세 번째인데 A가 나한테 B랑 절교할 거래. 나는 더 좋지 뭐. A가 나랑만 놀 수 있으니까." 자주 어울리던 A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아이에게 뭔가 말을 해주려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래도 A랑 B가 화해했으면 좋겠다, 다 같이 놀면 좋잖아, 정도 덧붙였으면 나았으려나?
앞으로 풀기 어려운 '친구관계'라는 문제가 얽히고설킬 테고, 그 안에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할지 머리를 쥐어짜야 하겠지만, 적어도 아이가 나에게 무언가 털어놀 수 있다는 사실에 한시름 놓는다.
이것이 나와 아이와의 애착관계 덕분이라면,
유치하고 유치한 클레이 놀이정도야 가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