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여름(2025.06-2025.08)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씻긴다.
머리를 감기고 몸에 비누를 칠한 뒤 물로 헹구어 낸다. 아이 혼자 샤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누칠은 제대로 했는지, 샴푸는 깨끗이 헹구었는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사실 아이는 아직도 나와 같이 잔다. 잠자리 분리는 아이도 그렇고 나도 원하지 않는다. 내 발가락 끝에 닿는 아이의 발 감촉이 나는 좋다. 이젠 내 발과 크기가 비슷해져 서로의 발을 맞대며 '발뽀뽀'라고 웃는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라는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혹시라도 잘하지 못할까 엄마가 도와주고 마는...... 지레짐작하여 내가 먼저 나서는 행동이 아이의 발달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우리 속도대로 천천히 하자 싶기도 하다.
세 살 무렵이었나? 어린이집 입소 상담을 하던 중 원장님이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아이가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엄마가 준비가 안 된 거 아니에요?"
당시 아이가 발달 센터에 다닌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불안해할 이유가 충분한 아이예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이 왜 생각난 걸까? 혹시 아이는 준비가 되었는데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게 아닐까?
발달이 느린 아이라도 '자립'은 필요하다. 분당서울대학병원 유희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폐 아동에게 사회성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립하는 방법 또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이란 혼자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 등의 일상적인 기술과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을 지어먹는 것과 같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 심지어 여름에는 얇은 옷을 입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으며, 한 두 번 입은 옷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세탁해야 하고, 그것을 말려 옷장에 정리를 해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놈의 집안일은 끝날 줄도 몰라, 하는 그 집안일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함께 사는 집이 아니라 아이가 홀로 살 수 있는 집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미뤘다.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사실 좀 귀찮기도 해서 등 이유는 다양했다. 엄마 말이라면 귀동냥으로도 듣지 않는 아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립은 누구든 배워야 할 과정이고, 언제가 되었든 아이는 자립해야 한다. 문득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아이의 자립도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현재 생활을 기준으로 한 아이의 자립도. 생각나는 것 몇 개만 정리하자면,
1. 세수하고 옷 입기 : 자립도 80% (옷을 아이가 직접 고르지 않고 내가 골라주기 때문이다)
2. 학교 가기: 자립도 70% ("너, 이러다 지각한다!"라는 말을 여러 번 해야 아이가 제때 나서므로)
3. 숙제하기: 자립도 50% (숙제하는 아이 앞에 앉아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이가 딴짓. 틀린 문제는 채점해서 고치라고 해야 하므로)
4. 정리 정돈: 자립도 40% (치우라는 말에 제대로 치운 적이 없어 내가 나서는 편이다)
5. 잠 자기: 자립도 0% (어쩌면 이게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일 수 있겠다)
정리를 하고 보니 뭐부터 시도해야 할지 감이 잡힌다. 자립도 100%가 힘들다면 80% 수준으로 맞춰 나가려고 한다. 현 상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가장 먼저, 잠자리 분리.
곧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