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분리

초4 아이의 가을(2025.09-2025.11)

by 하이리




김경일 인지심리학자와 류한욱 정신과 전문의가 함께 쓴 "적절한 좌절"을 읽었다.


적절한 좌절이란 다른 말로 거리의 조절이다. 아이와 부모 사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다.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가 분리되어야 한다. ‘분리하기’의 기본은 '먹고 자고'다. 식사 예절을 지켜야 하고 홀로 잠들 수 있어야 한다. ('싸고'도 있다. 책에는 기저귀를 떼지 않은 7살 아이가 나온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지만, 잠자리 분리에 대한 류한욱 전문의 생각은 명확하다. "아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잠자리 분리를 시도해야 합니다."


책을 읽고 내심 뜨끔했다. 아이는 아직 잠자리 분리 전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잠자리 분리를 하고도 남을 나이지만 여전히 아이는 나와 함께 잔다. 배든, 등이든, 손이든, 엄마 몸에 닿아야 잠이 드는, 옆에 엄마가 있어야 중간에 깨지 않고 자는 예민한 아이라 한들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은 뒤, 잠자리 분리를 하기로 했다. 이제 만 열 살, 지난 10년간 아이와 살을 맞대던 따스한 시간들에 감사한다.


곧바로 잠자리 분리를 시도했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지만, 자폐 아이도 언젠가는 홀로 자야 한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와 따로 자는 거 어때? 엄마가 책을 읽었는데 잠자리를 분리하는 게 너한테도 훨씬 좋대." 아이가 대답했다. 세상 쿨하게 "그래!"


바로 그날, 아이는 거실에서, 나는 방에서 자는 1차 분리를 시도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막상 혼자 자려는 게 어색한지, 아이가 나중에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혼자서 못 자겠다는 말을 서너 번 내뱉다가 스르르 잠들었다. 열어 놓은 방문 사이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새벽 세 시 무렵, 아이가 깼다.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왜 하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건데?" 볼일을 본 뒤 엄마가 없어서 한숨도 못 잔 것 같다는 아이에게, 이제 겨우 새벽 3시라고, 아직 잘 시간은 많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씩씩거리다 자기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숨소리. 1차 잠자리 분리는 성공적이다. 싱겁다 할 만큼.


잠자리 분리 이틀째, 거실에 이불을 펴는데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엄마랑 자면 안 돼? 다음 주부터 하면 안 돼?"

"안 돼!"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아이는 투덜댔다.

"엄마, 잠이 안 올 것 같아."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새벽 무렵 다시 아이가 깼다.

"엄마! 잠이 안 와. 잠을 못 잘 것 같아."

"가만히 눈만 감고 있어 봐."

몇 분 뒤 다시 아이가 잠들었다. 일곱 시가 되기 10여 분 전, 평소보다 일찍 깬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또 혼자 잤어. 오늘 정말 잘 잔 것 같아."


잠자리 분리 후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잠자리 분리를 입에 담았다. "이젠 혼자서 자고, 좀 의젓해진 것 같은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아. 한 단계 발전한 느낌이야." 혼자서 뭔가를 해냈다는 인식만으로도 긍정적인 역할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더 자주 말했다. 혼자서 자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아직은 거실과 방, 잠자리를 따로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곧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자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문을 닫고 잘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방에서 자면 엄마 목소리가 들려?"라고 확인하던 아이니까. 안방과 아이의 방문을 열면, 충분히 들릴 만한 거리. 그래, 목소리만은 분리하지 하지 말자.



일주일 뒤, 아이는 자기 방으로 갔다.
그리고 혼자서 잠든다.
여전히 서로의 방문은 열어둔 채.
여름 방학, 최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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