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능 ADHD에 대한 생각

초4 아이의 가을(2025.09-2025.11)

by 하이리




스레드를 통해 고기능 ADHD라는 표현을 종종 본다.


학업이나 업무를 하는데 지장은 없지만 불안이나 우울, 강박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공식적인 의학용어는 아니다. 고기능이란 단어가 낯설지는 않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 지능이 평균 범주에 속하는 경우를 고기능 자폐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 고기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고기능 자폐라 말하기도 하지만, 선호하는 건 그냥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고기능이란 용어의 모호성은 넘어가더라도(실제로 고기능을 높은 지능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고기능이란 단어 자체가 저기능이란 존재를 내면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기능 ADHD야. 저기능 ADHD와는 좀 다르지." 이런 의도가 읽힐 때도 '아주 가끔'이지만 있다. 증상에 따른 ‘경미’ 혹은 ‘중증’이란 표현은 어쩔 수 없지만, 능력의 높고 낮음을 떠올리게 하는 고기능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양했으면 좋겠다. 일상 생활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스스로 ADHD 증상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차라리 마스킹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으면 한다. 자폐인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한 과도한 마스킹으로 번아웃에 빠지는 것처럼. (사람들 모두 어느 정도는 마스킹을 하지만 이게 유독 어렵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와 정반대로 고기능 ADHD가 의미있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고기능 ADHD란 표현이 "겉으로는 잘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말 많아요."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장애가 생각보다 흔하고, 내가 그것에 해당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장애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 즉 9억 7천만 명이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비율이 가장 높다. 최근에는 고기능 우울증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내면에는 깊은 우울감이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는 상태. 고기능 우울증, 고기능 ADHD, 고기능 자폐... 그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장애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자극에 민감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도로 예민한 사람들(HSP)까지 고려하면 신경발달장애 혹은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전체 인구의 15-20% 정도가 HSP에 해당하는 연구 결과까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결국 고기능이란 단어에는 우리 모두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암시가 녹아 있는 게 아닐까? 그 암시가 장애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그래도 고기능이란 단어는 좀 씁쓸하다.
능력주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