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아이들 - 두 번째

written by 애비게일 슈라이어

by 하이리





이 책은 심각한 정신 질환이 아닌,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서두에 밝혔다.


걱정이 많고 불안하고 외롭고 우울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다. 이와 달리 심각한 정신 질환이 있는 아이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산적 활동은 물론 안정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심각한 정신 질환에 해당될까? 먼저 ADHD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점점 비정상적인 뭔가가 되어가고 있다. 2~8세 미국 아동 6명 중 한 명이 정신이나 행동 또는 발달장애를 진단받았다. 미국 아이들 중 10퍼센트 이상이 ADHD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근거로 산출한 예상 유병률의 2배나 되는 수치다. (중략) 언젠가부터 수줍음 많은 아이는 ‘사회불안장애’ 또는 ‘범불안장애’를 진단받았고, 언행이 이상하거나 판단이 서툰 10대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겪거나 적어도 ‘자폐스펙트럼장애 징후를 보이는’ 것이 되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우울증’이었고, 신체 행동이 서툰 아이는 ‘실행장애’였다. p50-51


책에는 ADHD 자녀를 둔 심리학자 오피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피르의 아들 미얀은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활발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ADHD 진단을 받고 리탈린 복용을 권유받는다. 오피르는 ADHD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데 그의 결론은 자극에 대한 과잉 반응과 주의 산만성을 특징으로 하는 AD HD는 ‘장애’의 표준 정의를 충족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리탈린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피르는 약물 치료 대신 평소 해야 할 일을 정해주고 규율과 틀을 만드는 등 행동수정기법을 사용했다. 열 살이 된 미얀은 날마다 점심 도시락을 직접 싸고, 매번 식기세척기 그릇을 빼서 정리하고, 여동생을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오피르는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아지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자란 아들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상심리를 판별하는 기준은 흔히 ‘4D’라고 불리는 일탈과 괴로움, 기능장애, 위험이다. ADHD는 그중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미국 아동 및 청소년의 10퍼센트 이상, 이스라엘 아동 및 청소년의 무려 20퍼센트에서 발생하는 ADHD는 드물거나 ‘기이하게 일탈된’ 현상이 아니다. p299


그렇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어떨까? ADHD와 달리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구체적 사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제안(?)받은 제이든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이든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신건강치료를 받았고 감각처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제이든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심리치료사에게 이 같은 말을 듣는다. "치료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만일 자폐 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대요."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이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부분에서 과잉진단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스펙트럼에서 알 수 있듯 진단의 범위가 넓어졌다. 비단 자폐스펙트럼장애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하다 하다 '털뽑기 장애' 같은 것도 등장했다. (‘털뽑기장애’라고도 부르는 발모벽은 자신의 털을 뽑아 만족감과 안도감을 느끼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을 뽑는 것을 말한다. p46) 책을 쓴 저자는 해리성정체성장애, 성별불쾌감, 자폐스펙트럼장애, 투렛증후군 등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요즘 청소년에게는 전혀 드물지 않은 진단명을 열거한다.


“정신적 문제 하나쯤 겪고 있는 걸 당연하게 여겨요. 그런 진단을 받는 게 정상인 것처럼 되어가고 있어요. 사실 정상이 아닌데 말이에요. 정신적 문제를 지닌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이제 비정상이 정상이 된 것 같아요. 이런데 제가 어떻게 영향을 안 받겠어요? 저도 우울해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p48


평범해 보이는 열여섯 살 노라의 말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정상은 없다’는 말이 때때로 위로처럼 다가왔다. 엄격한 의미로 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만약 평균적인 것을 정상이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 안에 들지 못하리라 여겼다. 모든 것이 평균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 또한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는 것이 아이를 보는 가시 돋친 시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경계할 필요할 있다. 모두가 비정상이라면 ‘정상’이라는 개념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상은 사회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살아야 하는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이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경우라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려고 한다. 모두 다 정상이다. 비정상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현저한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에만 지원과 배려가 필요할 뿐이다. 이 또한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미이지 ‘비정상’은 아니다.


대체로 불안과 우울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위협과 실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것은 심리적 불편을 초래할 수 있고, 만일 정상적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장애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이나 우울 자체가 기능장애는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는’ 만성 불안이나 우울증을 겪을 때만 약물을 통한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 p305


자폐 자체가 기능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자폐란,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제한된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자폐 진단의 가장 큰 틀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너무도 다양하지만 오로지 내 아이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아이는 아직까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겪지는 않는다. 불편함이 없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일상생활에서 자잘한 문제도 여전히 종종 일어난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아이에게 진단을 밝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자폐 당사자가 쓴 책을 종종 찾아 읽는데,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진단을 일찍이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했을 것이라고. 작가는 다른 주장을 펼친다. 아이에게 진단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가 가진 한계를 인식시켜 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정신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려는 고귀한 사회적 노력도, 진단명을 확정받은 청소년이 결정론적 태도를 갖는 것을(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엄마가 아무리 긍정적인 말을 해주어도 그 아이에게는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 중요해진다. 작업 치료사에게서 학습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거나 신경심리학자에게서 신경발달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아이는 이제 자신은 노력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의사가 병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것은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개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직 의학적 방법만이 그를 고칠 수 있다. p104


솔직히 나는 두렵다. 아이의 감정을 읽는 것이 되려 정서 발달을 방해한다던가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는 과정이 때때로 불필요하다는 다소 극단적인 작가의 주장에도, 이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아이가 진단을 받았다는 것. 아이가 받은 진단이 그저 지나갈 일에도 득달같이 달려와 의미를 부여하는 이 시대의 예민함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내 안에 꼭꼭 숨겨 놨던 진심.



장애가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른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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