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겨을(2025.12-2026.02)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이건 질환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성일 뿐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남다른 아이를 위해 환경을 섬세하게 조성하라고. 최근 읽은 "부서지는 아이들"은 다시 이야기한다. 심각한 정신질환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것이라고. 아이를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로 보는 이 시대가 문제라고. 나는 모두 타당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점에 따라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나에게 맞는, 내 아이에 맞는, 우리 상황에 맞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한 달 전 태양의 서커스 쿠자를 보았다. 몇 미터 상공에서 가느다란 줄에 의지에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곡예사.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균형이란 자갈밭을 달리는 차 위에 놓인 평균대에서 균형을 잡는 일과 비슷하다.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균형을 잡아야 할 때도 있고 왼쪽으로 기울여 균형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 부들부들 몸이 떨리는 한이 있더라도 두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삶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아이가 말했다. 학교 쉬는 시간 아이들 몇 명이 모여 "00는 00으로 유명해"라는 식으로 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채워 나가는 말놀이를 했단다. 누구는 응원을 잘하는 걸로 유명해. 누구는 친절한 걸로 유명해. 누구는 엉뚱한 걸로 유명해. 옆에서 가만히 듣던 아이가 하나 둘 숫자를 셌다. 반 아이 총 23명, 그중 22명의 이름이 나왔다. 단 한 명의 이름만 나오지 않았다. 바로 내 아이의 이름. 아이는 속이 상해 복도로 나가 우산받이 뒤에 몸을 숨긴 채 누워 있었다고 했다(아이의 반은 복도 끝에 위치해 있다).
"복도에 누워 있었다고?"
"응. 속상해서"
"혹시 막 소리치면서 화냈니?"
"아니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
"정말 너 빼고 모든 아이의 이름을 말했어? 네가 잘못 센 것일 수도 있잖아."
"아니야. 내가 계속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어."
나는 눈치가 없어 종종 소란을 일으킨다는 한 아이의 이름을 말하며 물었다.
"친구들이 00도 얘기했어?"
"응. 00은 그냥 그런 애로 유명해,라고 했어. 내 이름만 나오지 않았어."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 눈이 뜨거워졌다.
"안 좋은 점으로 유명하다고 한 것보다는 낫지 않아?"
"싫어. 그래도 내 이름을 얘기하는 게 좋아."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한테 너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걸로 유명한 아이야. 너는 너무너무 귀여운 걸로 유명한 아이야."
"아니야.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사실 화를 잘 내는 걸로 유명한 아이야. 친구들은 날 싫어해."
"그럼, 앞으로 발전하는 아이로 유명해지면 되잖아. 조금씩 나아지면 다른 아이들도 알게 될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해 줘서 고마워. 너를 위로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마음은 아프지만 진심이었다. 속상한 일을 나에게 말해줬다는 사실이. 지난 9월 초에 있던 일을 이제라도 털어놔줘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균형의 추가 움직인다. 왼쪽 혹은 오른쪽. 나는 아직 모른다. 직접 해 볼 수밖에. 혹여 균형을 잡지 못해 떨어지더라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 균형을 찾으면 된다.
공감이든 훈육이든 그 무엇이든
나는 우리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