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겨울(2025.12-2026.02)
아이가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황소다.
정확한 명칭은 '생각하는 황소'로 대치동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곳곳에 지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학원으로 성공한 요인을 꼽자면 아마도 선별 방식일 것이다. 입학시험을 통과한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데 대치동에는 황소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내가 사는 지역은 대치가 아니므로 게다가 학군지하고도 거리가 멀어 황소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일명 '황소 부심'이란 게 생긴다. 아이들은 학원에 간다고 하지 않고 기어이 '황소'에 간다고 말한다.
황소는 미션 문제를 다 맞힐 때까지 아이들을 학원에 붙들어 두는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황소에 갔다하면 4시간은 기본이다. 수업 시간에 떠들면 벌점, 집중을 하지 않아도 벌점, 숙제를 못해도 벌점, 지각을 해도 벌점 등 모든 것에 벌점이 매겨진다. 벌점이 많이 쌓이면 강제 퇴원. 쪽지 시험과 단원 평가에서 기준 점수를 충족하지 못하면 상급반에서 하급반으로 강등당하거나 유급을 한다. 정리하면 스파르타식 수학 학원에 가깝다.
학원 등록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입학시험은 운 좋게 통과했지만 과연 이 예민한 아이가 학원에 적응할 수 있을까? 사회성 그룹 선생님은 'No'라고 말했다. 엄격한 학원 시스템이 아이에게 맞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일단 학원에 다녀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내 욕심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이제 한 달여, 아직까지 아이는 학원에 잘 다니고 있다. 이걸 잘 다니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지는 헷갈리지만...
아이는 그동안 황소를 당장 그만 두겠다고 서너 번 말했다. 내가 재차 물으면 계속 다닐 거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학원 다니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아 했다. 이유는 황소에 대한 자부심. 아이는 황소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나 심화반에 들어가고 싶어. 더 잘하는 반에 가고 싶어." (현재 아이는 황소에서 가장 낮은 반이다.)
아이는 잘하는 게 없었다. 글씨도 못쓰고 그림도 못 그리며 만드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양손 협응 능력이 미흡한 탓이었다. 초등 남자아이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운동에서도 늘 바닥이었다. 달리기, 줄넘기, 훌라후프, 축구, 농구, 피구 등 모든 것에서 뒤처졌다. 심지어 아이는 경찰과 도둑, 일명 '경도'라는 술래잡기 놀이에서 번번이 당했다. 경찰이 된 아이는 도둑을 잡지 못했고 도둑이 된 아이는 경찰에게 가장 먼저 잡혔다. 친구들은 아이를 타겟으로 삼다가 나중에는 아이를 놀이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끼면 놀이가 시시해지기 때문이었다.
경쟁적인 데다 가뜩이나 이기는 데 목매는 아이. 그동안 켜켜이 쌓인 절망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황소에 다니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하나가 드디어 생겼다. "못해도 괜찮아. 열심히 하면 되지. 네가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야." 누가 봐도 가장 못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너 정말 잘하는구나." 아마 이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황소 수업을 듣던 첫 날 "엄마, 오늘은 내가 00보다 먼저 미션 문제를 풀고 나왔어." 아이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들떠 있었다. 00는 운동 천재라고 불리는 동네 친구였다. 아이는 황소를 통해 자신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이것을 자존감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건강한 자존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오늘도 황소에 간다.
지금 당장은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