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겨울(2025.12-2026.02)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습관처럼 묻는 말이 있다.
"오늘 뭐 했어?"
“책 읽었어.”
“점심시간에는? 친구랑 안 놀았어?”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었어.”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비슷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도 묻곤 한다. 혼자서 외롭진 않아? 이 말을 목구멍에 대롱대롱 걸린다.
"혼자서 책 읽는 것도 좋지. 그런데 혼자 있는 게 외로워지면 친구들이랑 놀자고 한 번 해봐."
결국에는 이 같은 말로 마무리다.
며칠 전 학교에서 인생네컷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있었다. 누구와 같이 찍었냐고 물었더니 혼자서 찍었단다.
“외롭지는 않았어?”
이 말을 기어이 내뱉고 말았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 아예 사진을 안 찍은 친구도 있더라고.”
나는 왜 마음이 아픈 걸까.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혼자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왕 혼자서 찍은 거 친구들 눈치 안 보고 맘껏 포즈를 취했겠네'라고 말해줄 것을. 사진 속 아이는 텅 빈 공간에 홀로 미소를 지은 채 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도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친구가 없어서 서글픈 것은 내 마음일 것이다. 나는 지금 내 감정과 아이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이 나이 정도였을 때,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같은 반 친구들을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적 있었다.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놀이터에 달려가 같이 놀자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창문을 닫았다. 아마도 슬펐던 것 같다. 친구들이 놀고 있는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칫, 나만 빼놓고.
학기 말이 되면 왜 이리 이벤트가 많은지 이번에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이 말에 따르면 편지를 네 장이나 받은 아이도 있었고, 한 장도 받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편지를 받지 못한 아이는 모두 두 명. 아이는 이 안에 들지 않았다. 사실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너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고?"
"응. 나는 편지를 못 받을 것 같았거든"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너한테 편지를 쓴 거야!"
"선생님이 친구에게 선물하라고 사탕도 주셨는데, 내가 받은 사탕이 내가 좋아라는 콜라 맛인 거야. 그 사탕 내가 먹고 싶어서. 콜라 맛 사탕을 받은 애가 나하고 다른 애 하나 밖에 없었거든."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외롭지는 않았어?"
"외롭진 않아.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라면 외로웠을 것 같아. 친구한테 편지를 못 받았으니까. 엄마, 나는 왜 이럴까?"
다른 아이들이라면 외로웠을 것 같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만 외롭지 않으면 되지." 나는 고쳐 말했아. "괜찮아. 혼자라도 괜찮아."
이런 상황이 외로운 것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 외롭다는 건 기실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아이는 외롭지 않다. 혼자서도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당찬 아이고,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먹고 싶은 사탕을 쟁취하는 영특한 아이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홀로 책 읽기기가 편한 아이기도 하다.
언젠가 왜 혼자서 책만 읽냐는 질문에 대한 아이의 대답. "친구들하고 놀다가 내가 소리를 지르게 될까 봐 무서워. 나 혼자 있으면 친구들에게 화 낼 일도 없잖아."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전개.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아이만의 사정이 있다. 나의 사정을 아이에게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아이의 행동에 내 멋대로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무엇이 더 알맞은지는 아이의 선택이다.
아이는 괜찮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