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5 아이의 봄(2026.03-2026.05)
새학기, 담임 선생님과 첫 상담을 했다.
4학년 때 전담 선생님으로 아이를 맡은 적이 있던 터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이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어서 더 안심이 되었다. 공개수업이 끝나자 마자 상담 신청을 했고 지난 주에 선생님을 만나뵈었다.
내가 먼저 아이의 자폐 진단 이야기를 꺼냈다. 다가오는 여름에 종합심리검사를 앞두고 있고 전문의 소견에 따라 만 6세 때 했던 자폐 검사를 다시 할 예정이라고. ADHD도 의심 중이라 ADHD 검사도 함께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검사 결과에 따라 약물 복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검사 결과가 나오게 되면 공유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담임 선생님께 자폐 진단을 알리는 게 처음은 아니라 이 과정이 그다시 힘들지는 않았다. 살짝 눈물이 고일뻔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넘겼다.
"작년에 비해 아이가 발전한 게 보여요. 또래보다 미숙하긴 하죠. 그래도 지금까지 눈에 띌만한 일은 없었어요. 제가 보기엔 ADHD 처럼 보이지도 않고. 이번에 자폐 검사를 하면 아마 자폐가 아니라고 나올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선생님 말씀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해 상담이 떠올랐다. 하루이틀 만에 아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정도로 눈에 띄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이번 상담은 괄목한 만한 변화였다. 아이가 많이 노력하고 있구나. 제 모습을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 기특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짠했다.
마스킹. 자폐인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쓴다는 의미다. 일부 자폐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스킹을 하기 때문에 번아웃에 쉽게 빠진다고 알고 있다. 우울이나 불안장애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마스킹 능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가끔 과한 마스킹이 아이를 갉아 먹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집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 내 앞에서 아이는 여전히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늘 날이 서 있다. 이런 걸 다행이라 생각하는 나도 웃기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편히 숨쉴 곳은 있어야 하니까.
어제 저녁, 아이가 숙제를 하다가 수학 문제 틀린 것을 두고 버럭 짜증을 냈다. 계속 되는 짜증에 내가 뭐라고 하니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5점에서 시작한 벌점이 -60점이 되었다. 결국 아이가 씩씩대며 종이에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수학 문제를 푸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나, 기분 나빠." 이렇게 하기까지 아이는 집이 떠나갈 정도의 고함을 질렀지만 마지막엔 결국 앉아 낙서를 하며 기분을 진정시켰다. 이건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걸로 됐다.
그래. 이렇게라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자.
아주 잘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