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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Jan 15. 2023

시 읽기 좋은 날

선생님은 시가 좋아요?


예비 고1 아이들 수업을 현대시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하루는 한 학생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솔직하다. 나도 딱히 교과서에 나오는 현대시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내가 어려서 좋아한 시는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하다는 시인들의 시는 나에겐 어떤 울림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내가 좋아한 가요들은 반대로 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고 사랑 노래만 하는 가수들은 하찮게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어 수업을 들으며 좋아한 것은 고전시였다. 현대시 수업이 내 대학 4년간 제일 어려웠다. 반면 고전시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해당 분야 전문이신 교수님 수업을 다 따라다니며 들었더니, 교수님들이 당연히 내 졸업논문이 고시일 거라고 생각하실 정도였다. (당시 교수님이 내 논문을 보고, 고시가 아니네?라고 하실 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었다.) 고시는 뭔가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희열이 있었다. 그 비밀은 아주 귀한 상자에 담긴 보석 같았다. 그 정제된 아름다움과 품격이 나를 한층 더 우아하게 만드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생활까지 다 마치고 세상에 나와서도 나는 딱히 현대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교과서에 있는 그 시들은 메마른 낙엽처럼 나에겐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않았다. 


문법은 수업을 하면 처음엔 어려워서 고통을 호소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하는 것이 보여 재미있었고, 소설이나 희곡은 아이들이 즐겁게 읽는 수업이라서 좋았다. 고전시는 아이들은 별로 흥미 없어했어도 내가 워낙 좋아하니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국어 선생이라면서도 여전히 나는 현대시는 가장 재미없는 아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의 시 한 편이 마음을 후빈 적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던 시기였는데, 그날 문뜩 내 얼굴이 정말 '어느 왕조의 유물'같아서 '욕되'보였다. 그 혹독한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내 손에도 '녹이 낀 구리거울'이 들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겨우 시를 이해할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재미없는 문학으로 취급했던 것이 사실은 나의 아둔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영글지 못해서, 내가 아직 덜 자라서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시가 어렵다 재미없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함께 끄덕이며 웃어준다. 아직 너희는 준비가 덜 되어서, 아직 덜 영글고, 덜 자라서... 온전히 너희의 마음에 와닿는 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조금 친해져 보자고 말한다. 너희들이 즐겨 듣는 가요의 가사들이 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말도 덧붙여보지만, 아이들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식으로 투덜거리고는 한다. 그래도 가끔. 수많은 아이들 중에 한 둘은... 그 수많은 시들 중에 한 편과 닿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아이의 마음속 무엇이 그 시와 연결된 것인지 나도 모르고 아이도 모른다. 시는 그냥 그렇게 닿으니까. 


고등학교 때 문학 수업을 하다가 창밖을 보며 눈물을 훔치신 국어 선생님 일화는 우리 학교에서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다들 깔깔거리고 웃었는데, 그날 그 시가 국어 선생님의 가슴에 닿은 그런 날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때 선생님은 그 감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시기 어려웠겠지. 지금의 내가 그러듯이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다소 지루해해도 열심히 수업을 해본다. 언젠가 이 아이들에게도 '시 읽기 좋은 날'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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