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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Feb 15. 2021

보고 싶은 나의 큰아들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아들에게     


보고 싶은 나의 큰아들아.

너의 전역일도 이제 머지않았구나. 곧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를 생각하며 이렇게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쓴다. 자대 배치를 받으면 바로 주소만 알려 달라 했는데, 그것 하나 들어주지 않는 네가 야속하다가도 부담스러워 그러나 싶어 탓도 못했다. 그래도 종종 너에게 전화가 오고, 메시지가 오니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기쁘단다. 어쩌다 휴가를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심 얼굴 한 번 보자고 너에게 보채고 싶다가도 그 귀한 시간을 아껴줘야 한다는 생각에 꾹꾹 참았다. 너의 연락에 그저 무심하게 답하고는 했지만 그 모든 것은 내 넘치는 그리움과 걱정을 너에게 보일 수 없어 그러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종종 그리움이 넘치면 너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그마저도 너의 사진이 아닐 때는 왜 너와 사진 한 장 남겨 두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전역해서 나를 찾아온다면, 제일 먼저 너와의 사진을 하나 남겨야지 생각했단다. 그러나 이내 내가 뭐라고 너의 시간을 빼앗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이마저도 말 못 하고 참을 것 같구나. 


농담처럼 너를 아들이라 하고, 이 선생이 홀로 늙어 죽으면 장례식장이나 오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이제 너의 삶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방황하던 중학생 꼬마가 이제 어엿한 대한의 청년의 되었으니, 못난 선생은 더 이상 너에게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큰 사람이 되지는 못해서 남은 네 삶의 스승이 되어 줄 수 없으니 자라는 너에게 그늘이 드리우지 않게 비켜 주어야지. 그래도 착하디 착한 너는 종종 내 안부를 물을 것이고, 나를 여전히 어른이라 믿는다면 조언을 구하려 하겠지. 부족한 것 투성인 선생이라 너에게 못난 모습도 보였었고, 실수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어린 네가 나에게 의지해서, 나는 참으로 내가 부끄러웠단다. 더 좋은 어른이 되어 너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나라는 사람이 너무나 작아서 그러지 못해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럼에도 나는 뻔뻔스럽게 네가 나의 큰 아들이라며, 너에게 선생님 소리를 여전히 들으며 너의 전역을 마냥 기다리는구나. 씩씩하게 전역신고를 할 너를 만날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자랑스럽구나. 그사이 너는 또 얼마나 자랐을까. 또 얼마나 성장했을까. 그럼 나는 또 사람들에게 말하겠지. 내 제자가 이렇게 멋지게 성장했다고 말이다. 사실 사람들에게 나는 늘 너를 자랑한단다. 이 녀석이 내 제자라고, 이 자랑스러운 녀석이 나의 소중한 제자라고, 이 멋진 녀석이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감사를 표한다고 말이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 참으로 뻔뻔한 선생이구나, 나는. 


입대 전 네가 인사를 왔던 날. 내 눈에는 아직도 지켜줘야 할 꼬마 녀석으로 보이는 네가 이제는 나를 지킨다며 군인이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단다. 농담이나 하며 웃으면서 장난치며 너를 보냈던 것은 네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너와 인사를 하고 돌아와서 나는 한참을 아무 생각도 말도 못 하겠더라. 그저 무탈하게 전역하길 바라면서 달력의 날짜들만 바라보았단다. 아, 이쯤이면 훈련소에 적응했겠구나, 이쯤이면 훈련소에서 자대로 이동하겠지, 이쯤이면 첫 휴가가 될 것이고, 이쯤이면 일등병이, 상병이... 너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구나. 우리 꼬마. 


개구졌던 그 꼬마.

불량스러웠던 중학생.

어른인 척하던 고딩.

실수한 선생 앞에서 보다 의연했던 청년.

덩치만 커졌지 여전히 여린 소년...

세상 원망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을 텐데, 그런 내색 한 번 없었던 착한 우리 아들.


지난날엔 너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하기도 했단다. 힘이 들면 전화하는 걸 알기에... 너에게 힘든 일이 없었으면 했기에... 여전히 나는 너에게서 전화가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부터 하지만, 군대가 잘 맞는다며 능청스럽게 웃는 너라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도 놓이는 척 웃으며 가볍게 농담이나 한다. 그러고 나서 또 한참을 나는 너를 생각한다. 혹여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두 눈으로 너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어 노파심이 동하는 것이겠지만, 누구에게 속내를 보이는 녀석은 아니 었으니... 나는 또 걱정이 앞선다. 부족한 선생인 내가 이럴 때 너무 싫구나. 이제 이 못난 선생은 너의 미래를 기도하는 일 밖에 없구나. 그저 더 훨훨 높이 날아가길. 오직 옳은 길만 택해 가길... 부족한 이 선생의 사랑으로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길...      

보고 싶은 나의 큰 아들.

더 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큰 버팀목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2019년 너의 전역을 기다리던 어느 날.



후일담

전역을 하고 큰아들은 저를 찾아왔고, 맛있게 밥도 먹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졸지에 온라인 대학생이 되는 굴곡을 맞이했죠. 저의 착한 큰아들로 이 선생이 뭐라고 여전히 이런저런 의논을 하고는 합니다. 이번 설에도 잊지 않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꺼내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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