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선생 Feb 01. 2021

졸업식

아이들과의 마지막(?) 데이트

졸업식도 온라인이래요.


가엽게도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아이들 인생에 한 번뿐인 졸업식마저 비대면이 되어버렸다. 졸업 앨범에 단체사진 조차 찍지 못한 학교들도 많고, 졸업식의 의미가 퇴색되어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어떤 아이들은 가족과 사진만 찍으러 학교에 다녀올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참으로 안타까운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핸드폰을 간절하게 들여다 보고는 다. 고3 졸업생 아이들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학원으로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카톡으로 메시지가 오는 경우들도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약속을 잡다. 졸업한 아이들끼리 서로 친하면 한 두 명만 연락이 와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아이들의 연락을 또 마냥 기다려야 다. 아이들에게 종종 말을 해놓기는 했어도 막상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의 맘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그저 나는 처분만 기다다.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냥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은 참 어렵다. 처음 고3 아이들이 졸업해 나갈 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해가 점점 지나고 나와 고등학교 3년을 함께한 아이들이 졸업할 때부터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아이의 입시 결과가 다 내 탓 같아지면서부터 이맘때의 아이들이 참 어렵다.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했으니 당연히 나를 좋아할 거라고 믿기는 한다. 선택받는 선생의 입장이라서 고등부 아이들에 대한 그런 확신이 드는 것은 참 좋다. 다만 또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도 나를 보고 싶어 할까 하는 부분은 자신이 없다. 다른 의미로 그저 아이들에게 나는 적절한 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이들과의 약속이 잡히면 나는 '졸업식'을 준비한다. 우선 졸업생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대부분 나의 선물은 필기구이다. (3월엔 중학교 입학생, 고등학교 입학생들에게 필기구를 선물한다.) 선생이 학생에게 주기에 가장 적절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필기구를 사줄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이들 반응이 엄청 좋았다. 그 뒤로 계속 사주고 있는데 매번 반응이 좋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는 대학로에 간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진짜 졸업 선물은 ‘문화’다.


시작은 아주 오래 아끼던 제자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무슨 대화 끝에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뮤지컬이 있었다. 워낙 아끼는 아이이기도 했고, 공연문화에 나도 맛이 들려가던 때라서 꼭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었다. 나는 그게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았다. 무대 예술을 접하는 경험을 시켜줬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문화 선물을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업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공연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도 있어서 대극장 뮤지컬 공연은 못 가고, 보통은 연극 관람을 시키는데 되도록 생각할 것들이 있는 작품으로 고른다. 내가 옆에서 쭉 지켜본 아이들이니 성향 파악도 다 돼있어서 지금까지 공연 선택은 다 성공이었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공연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 그리고 식당에서 ‘마지막 수업’을 한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아이들이 저마다의 소감으로 떠들게 놔두거나 아주 살짝 옆에서 훈수를 둔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가끔은 이렇게 나와서 공연도 보라고 말해준다.


음악의 가사를 음미하고, 영화 드라마의 스토리에 빠지고, 뉴스를 분석하고, 사회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전공과목을 이해하고, 연극 공연을 즐길 수 있다면... 사실은 그게 진짜 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앞으로 살면서 국문과에 진학하지 않는 이상 본인이 국어 공부는 다신 안 하고 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앞으로 너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국어 공부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렇게 마무리한 하루가 나에겐 아이들과의 졸업식이다. 물론, 언제나 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이렇게 하곤 한다.     


언제든지 선생님 필요하면 연락해.
공연 추천해 주세요 하면 추천해주고, 치맥 사주세요 하면 사주고, 군대 가니까 술 사주세요 하면 사주고, 그냥 심심해서 연락했다고 해도 받아 줄게.


그 후로도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냐면... 온다. 교양 수업 듣다가 모르는 게 있다고 질문하고, 처음 쓰는 리포트 어떻게 써야 하냐고 묻고, 정말 맛있는 거 사달라고 오고, 군대 간다고 인사 오고, 자기소개서를 쓴 것 좀 봐달라고 연락 온다. 그게 내가 또 아이들과의 마지막을 소중하게 보내는 원동력이 된다. 비록 내 서랍에 전해주지 못한 졸업 선물도 남아 있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아이들을 만나기가 더 어려울 듯싶어 아쉽다. 조금 늦게라도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고 함께하는 시간을 맞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신입 강사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