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주부의 소울푸드
먹는 이의 영혼을 감싸주는 음식 또는 자신만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늑하고 따뜻한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한다. 나에게 소울푸드는 '닭볶음탕'이다.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출가를 했다. 오랜만에 집에 가는 날이면 부모님은 늘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답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식이 닭볶음탕이었다. 방학해서 집에 갔을 때, 긴 훈련을 끝내고 집에 갔을 때, 파병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가끔 기운 없을 때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늘 닭볶음탕을 해주셨다.
내가 집에 가는 날이면 맛있는 거 먹이고 싶다고 외식하자고 하셨지만 맨날 먹는 바깥 음식에 질려버린 나는 집밥을 고집했다. 맵고, 짜고, 단 음식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특히 밖에서 먹으면 지독히도 자극적인 맛을 뽐내는 닭볶음탕은 집에서 먹을 때만큼은 순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집이 그리웠던 나를 위로해 주었다.
프랑스 생활을 열심히 적응해나가고 있지만 문득 엄마의 집밥이 생각나 직접 닭볶음탕을 해봤다. 닭볶음탕용 닭을 팔지 않아서 닭다리만 8개가 한 팩으로 들어있는 것을 샀다. 오히려 좋았다. 요리영상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완벽한 닭볶음탕을 위해 나름 연구를 했다.
프랑스 닭은 왜 깃털이 남아있는 건지.. 난생처음 깃털도 뽑아봤다.. 깨끗이 손질한 닭을 튀기듯 굽고, 마늘과 간장으로 양념을 입히고, 물을 부어 고춧가루, 고추장, 물엿등으로 양념해 가며 감자와 함께 졸였다. 처음엔 떡볶이 맛이 나서 망했나 싶었는데 역시 음식은 정성이다. 익히면 익힐수록 맛있어진다. 자글자글 양념이 졸여지면 신나게 뜯어먹으면 된다.
내가 한 닭볶음탕이 맛이 없고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 그리웠다.라고 써야 일반적인 글의 흐름상 맞을 테지만.. 놀랍게도 내가 만든 닭볶음탕이 상당히 맛있었다. 한 입 먹었는데 깜짝 놀랐다. 프랑스 국가 상징이 왜 닭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닭 자체가 맛있었다. 고기 육질이며 육향도 기분 좋고 이렇게 진하고 신선한 닭은 처음 먹어봤다. 우리나라 토종닭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심지어 다리로만 끓인 닭볶음탕이라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에는 당근이 들어가서 골라서 먹었는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감자만 왕창 넣어서 끓여 먹을 수 있다. 내 살림을 꾸리면서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 생각나서 직접 끓여 먹는다는 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나 꽤나 많이 컸구나.
프랑스에서 씩씩하게 닭볶음탕을 끓여 먹는 딸을 보며 엄마는 뿌듯해하시겠지. 잘 살진 못하더라도 앞가림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내가 여태까지 먹어왔던 닭볶음탕 덕분일 거다. 집에 갔을 때 미리 끓여놓여있던 닭볶음탕이 보고 싶다.
한국 가면 먹고 싶은 음식 1순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