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주부 최대의 고민
장바구니를 들고 텅 빈 조그마한 냉장고를 찬찬히 둘러본다. 도대체 한국에서는 어떻게 먹고살았더라. 프랑스와 한국의 삶을 비교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도무지 안 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먹는 것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장을 보러 가지 않았지만 핸드폰으로 간간히 주문한 식재료들이 냉장고와 냉동고에 상시 대기 중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아쉬움 없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요리를 하기 귀찮거나 생각나는 메뉴가 없을 때는 배달을 시키거나, 밖에 나가서 먹고 오면 그만이었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게 아닌 이상 뭘 어떻게 먹어야 하지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프랑스는 늘 집에 손님이 오는 것처럼 메뉴를 고민하게 된다. 냉장고는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크기에 냉동고는 안에 서랍 한 칸 크기이다. 식재료를 쟁여놓는다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는 환경이다. 환율과 파리의 물가는 외식과 배달을 몇 번이나 고민하게 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한 초보주부는 괜히 비어있는 냉장고만 들여다본다. 도대체 뭘 사야 하는 거지.
사실 혼자 있으면 고구마, 가지, 당근, 애호박등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을 뿌려 구워만 먹어도 된다. 요거트에 꿀을 뿌리고 바나나 한 개를 썰어 넣어 먹거나 새콤한 사과에 고소하고 달콤한 땅콩버터를 발라 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당근과 오이를 길게 썰어 올리브유, 식초, 후추로 간을 하고 고구마랑 먹는 것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거창하게 요리하지 않아도 건강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서 주로 이렇게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같이 사는 분은 강경한 단백질파이다. 끼니마다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어야 하고, 야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보조수단일 뿐이다. 시리얼이나 두유를 고를 때도 맛을 보고 고르는 게 아니라 단백질 함량을 보고 비교한다. 또 음식은 식으면 맛없어진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어서 식탁에 올리기 전까지 음식은 늘 뜨겁게 끓고 있어야 한다.
전혀 다른 취향의 두 사람이 함께 모여 살게 되었으니 식재료도 요리방법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내내 고기만 구워 먹었었다. 제일 간편하면서 둘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구운 야채를 좋아하고, 남편은 구운 고기를 좋아하니 둘에게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1년 6개월 동안 내내 이렇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양소 탄탄하고,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초보주부의 첫 번째 임무!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뉴가 몇 개 없어서 식단표를 검색해 가며 할 수 있을 것 같은 메뉴를 추려나갔다. 그리고 영상으로 요리 브이로그 같은 걸 찾아보면서 다들 뭘 먹고사나 염탐했다. 새삼스럽게 집밥 해 먹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집밥을 뚝딱할 수 있는 능력이 이렇게나 많은 창의력과 센스가 요구되는 일이었다니.
고민과 연구의 시간 끝에 우리 살림에 필요한 건 요리기술이 아니라 장보기 노하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을 많이 봐와도 막상 먹을 게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야채를 좋아하는 나와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건강한 장보기 노하우를 찾았다.
장보기 전 영양소 항목 별로 비율을 정해놓는 것이다. 야채 4가지, 고기 3가지, 탄수화물 2가지, 과일 1가지 이런 식으로 정해놓으면 영양소도 잡혀있고 메뉴도 수월하게 정할 수 있어 냉장고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사실 이렇게 정해놓지 않으면 어떤 날은 단백질을 놓치고 어떤 날은 탄수화물을 놓쳐서 다시 장 보러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이 방법으로 필요한 것만 살 수 있게 되었고, 과소비를 예방하여 살림에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살림은 해본 적 없는 분야지만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초보주부는 한층 더 성장했다.
영양소 탄탄하고,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고민은 주부로서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다.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과 맛있게 먹을 사람을 위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이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이 고민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 고민과 짜증 너머에는 어떻게든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주부들의 속마음이 있다.
이 따뜻하고 다정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고민한다.
오늘은 뭘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