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폭락, 미치광이 프라이팬

만만하지 않은 살림의 세계

by 프렌치장금이

프랑스는 버터의 천국이다. 한국에서 비싸서 못 먹는 그 유명한 프랑스 버터들을 집 앞 마트에서 '이번에는 뭘 먹어볼까'하면서 골라 먹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신선한 버터와 치즈를 합리적인 가격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은 이곳만의 장점이다.


무게 단위로 골라 담을 수 있는 신선하고 씨알 굵은 농산물, 처음 보는 향신료, 달콤하고 상큼한 과일들. 농업 강국답게 어느 곳을 가도 이것들의 모양과 상태는 늘 최상이다.


돼지, 소, 닭은 물론이고 송아지, 오리, 간, 칠면조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집 앞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품질은 말할 것도 없이 신선하다. 각 고기의 육향이 굉장히 진해 별다른 양념 없이 익혀만 먹어도 맛있는 수준의 살코기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집 앞 마트에만 가도 왜 프랑스가 미식의 국가인지, 농업강국인지, 프랑스 가정식 메뉴가 다채롭고 다양한 맛을 내는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신선한 식재료 하나가 내는 맛이 풍부하고, 배달음식보다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문화여서 그런지 농산물에 대한 소비도 원활하다. 때문에 좋은 품질을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선순환의 구조를 띄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다. 좋은 식재료를 쉽게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이곳은 '집밥'해 먹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된 나는 요리를 열심히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한국에서처럼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 좋은 재료들을 그냥 두고 떠나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마트에서 익숙한 재료들만 몇 가지 사 와서 '기본적인 음식'을 먼저 해보려고 했다.


만만한 간장계란버터밥. 학교 다닐 때 항상 아빠가 아침으로 해주던 단골 메뉴였다.


뜨끈한 흰 밥에 간장, 버터 그리고 계란 프라이가 전부인 간단한 레시피이다. 혼자 먹는 첫 메뉴로 선택한 이유였다. 새벽에 미역국을 먹고 남은 밥이 있어서 계란프라이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깼다. 조금 들러붙는 것 같아 들췄더니 그대로 계란이 흘러내려 프라이팬으로 퍼졌다. 계란 한알이 크기는 왜 이렇게 큰지. 프라이팬 반을 덮었다. 스크램블이라도 해 먹어야 하나 해서 뒤적였더니 뒤적여지지가 않았다. 다 들러붙어버렸다.


무슨 계란프라이도 안 되는 프라이팬이 다 있나 싶어서 남편한테 물어봤더니 원래 그렇단다. 스테이크도 들러붙고, 감자도 들러붙고, 빵도 들러붙는 프라이팬이란다. 산지 두 달도 안 됐고 생긴 건 아주 멀쩡하게 생겼는데.. 정말 이상한 프라이팬이다. 설거지할 때는 들러붙은 게 또 잘 떼어진다. 코팅이 잘 되어있다는 멘트가 이런 의미였나 싶을 정도이다. 이런 프라이팬으로 앞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니. 막연한 마음에 주말에 아주 성능 좋고 요리하기 좋은 프라이팬을 사러 가자고 말했다.



실력이 안 좋으면 도구라도 좋아야 하는 건데 둘 다 안 좋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신선한 식재료는 다 준비되었으니 이제 나의 요리실력만 준비가 되면 완벽할 줄 알았다. 살림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나는 곳이고 뜻처럼 되지 않는 곳이었다. 프랑스에서 계란프라이를 먹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확 줄어버렸다. 계란말이, 계란프라이, 볶음밥.. 이것들 빼면 그동안 뭘 먹고살았더라. 프라이팬 하나로 삶의 질이 급격하게 낮아진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프라이팬으로 어떤 요리를 해 먹는 것일까..


살림에 발을 깊게 담글수록 한국이 그리워진다. 아직은 한국의 편안했던 생활이 그리운가 보다. 그래도 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나만의 살림 노하우가 생겨서 많은 음식들을 해 먹을 수 있게 된다면 프랑스 생활 또한 그리워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사서 그날 요리 해 먹는 번거로움과 열악했던 조리도구와 함께 했던 불편한 생활 모든 것이 그리워지게 만들어야지. 마지막 날에 '또 언제 이렇게 해보려나' 싶을 정도로 익숙해지고 후회 없이 살아 봐야지.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지. 다짐한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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