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게 그리고 든든하게 먹기
프랑스에 온 지 2개월이 흘렀다. 새로 사귄 친구는 없고 제일 많이 한 프랑스어는 'Une tradition, s'il vous plait.(바게트 하나 주세요.)'이다.
혼자 있는 날에는 센강을 달린다. 강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유람선을 타고 한껏 이 도시를 즐기는 관광객들, 각자 페이스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연히 만난 귀여운 강아지의 이름이 궁금하지만 할 줄 아는 프랑스어가 없어 진실의 미간과 함께 엄지만 척 날리고 후다닥 도망간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바게트를 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사던 대로 한 개. 사실 프랑스어로 바게트 하나 주세요 밖에 모른다. 개운하게 씻고 나온 뒤 바게트에 버터와 잼을 발라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먹는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일상이 로망이고 꿈이리라 생각하며 괜한 쓸쓸함을 달랜다.
분명 멋있는 일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힘들고 피곤한 출근도 하지 않는다. 근데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헛헛함이 있다. 마치 후- 하고 불면 흩어지는 쌀로 냄비밥을 지어먹은 것처럼 말이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언어, 문화, 인간관계도 전부 달라진 이곳에서 비워진 빈 공간을 나는 다시 무언가로 채워야 했다. 그 공백을 가장 즉각적으로 채우는 방법은 바로 '고봉밥'이었다.
한국에서는 살찔까 봐 잘 먹지 않던 흰쌀밥을 프랑스에서는 고봉밥으로 꾹꾹 담아 먹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면 반공기는 미리 덜어놓고 식사를 하던 사람이 아마존에서 3만 원 주고 산 밥솥으로 많으면 하루에 두 번 밥을 지어먹는다. 매 끼니마다 갓 지은 쌀밥을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지만 적어도 얼마나 밥을 담을지는 내가 정한다.
이것이 나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적당히 절제해서 먹는 습관은 사치였다. 대충 먹고 넘기면서 나를 줄여가던 지난날과 비교했을 때 고봉밥은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챙긴다'는 강력한 선언을 하는 것과 같았다. 충분함과 든든함을 매일매일 나 자신에게 허락했다. 배를 채우고 마음의 허기 채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먹었다.
샐러드 야채랑 계란프라이를 비벼 먹더라도 숟가락으로 한 숟갈 크게 떠서 와구 먹었다. 또 그만큼 움직였다. 청소기가 없으니 하루에 한 번 빗자루 질을 하고, 작은 세탁기로 열심히 빨래를 돌리고 널고, 쌀을 사러 중국마트에 가고, 울적한 기분을 털어내러 센강을 달렸다.
고봉밥은 건강한 에너지로 나를 채우고 움직이게 한다. 비워져 있다면 다시 채우면 된다. 더 맑고 따뜻한 것들로 채워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한 숟갈 크게 뜨고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