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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디얼리스트 Nov 26. 2019

아빠 육아휴직을 승인받는 현실적인 방법

사내 최초의 남자 육아휴직자가 알려드립니다.

육아휴직을 가는 아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만명을 훌쩍 넘었다죠.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해외 선진국 못지않습니다. 아빠에게 유급으로 1년까지 육아휴직을 주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에 불과한 데다, 자녀가 만8세 이전이라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니까요.


제도적으로는 한국 아빠가 세계 최장기간의 유급 육아휴직을 갈 수 있습니다.  <OECD Family Database>


하지만 계속해서 이질감이 드는 건 왜일까요. 내 주변에서는 육아휴직을 썼다는 아빠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휴가 하루 쓰는 데도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보통의 직장인에게 휴직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한 번 써보고 싶지 않나요?


제도가 버젓이 있는데도 사용 못하는 건 좀 억울하기도 하고, 육아휴직의 장점은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소심해서 고민이시라구요?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여기서 잠깐 휴직 중 급여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1) 어디서 돈이 나오는가?

→ 우리가 냈던 고용보험에서, 즉 국가에서 급여를 줍니다. 사업주 부담은 없습니다.    


(2) 얼마나 나오는가?

육아휴직 급여는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우니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해가 되신다면 다행입니다.


(엄마가 쓴 다음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기간은 1년, 월급은 250만원 이상인 경우)

→ 첫 3달은 매월 250만원, 나머지 9달은 매월 90만원, 복귀 6개월 후 270만원

→ 요약하면 총 1,830만원, 월평균 150만원 수준


어떠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출근을 안 하는데 이 정도 금액이 지원된다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휴직이 중요해도 당장에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섣불리 권유하기가 어렵습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급여 부분이 첫 번째 허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육아휴직 승인을 받아볼 차례입니다. 누구나 용감한 아빠가 될망정 무모한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최대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회사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요.



1단계 : 마음가짐 - 더 이상은 눈치보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왔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회사에서는 우수사원으로 보이기 위해서 말이죠. 그 과정이 행복했다면 논외입니다만, 늘 순응만 했던 결과는 만족스러우셨나요?


생각건대 지금 아빠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굉장한 충성맨은 아닐 것 같네요. 회사 입장에서는 휴직자를 달갑게 볼 리 만무하니까요. 법이나 사내규정이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잘 아실 테구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느 정도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회사에서 찍히게 되는 상황을요. 만일 승진이나 고과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다면 재고를 권합니다. 뉴스에서는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냈다가 퇴사를 종용받는 사례도 나오니까요.


저도 타고난 소심쟁이(어렸을 때는 화장실 간다는 말을 못 해 그대로 바지에 오줌을 싼 적도 있었습니다)로서 결심하기까지 1년 넘게 끙끙 앓았습니다.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소심하게만 살아온 내가 참 답답하더군요. 진짜 육아휴직을 쓴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봤습니다. 욕먹을까? 찍힐까? 설마 잘릴까? 승진이야 나중에 하면 되고, 육아휴직 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회사라면 안 다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면 실업급여나 받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건 극단적인 상상이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음을 다잡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면 결과는 이보다 낙관적일 테니까요. 요는 보수적인 회사일수록, 전례가 없을수록 더 단호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2단계 : 연습 - 사유를 명확히 하고 공유한다.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하면 분명 ‘왜?’라는 물음이 돌아올 테고,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겁니다. 법률적으로야 특별한 사유는 필요없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6개월 이상을 근무하고,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육아휴직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누가 들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합니다. 말은 꺼냈으나 결과적으로 휴직은 못 가고, 회사에서 찍히기만 하는 최악의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구구절절이 아닌 한두 마디로 똑 부러지게, 약간의 포장은 필요하지만 어설픈 연기는 금물입니다.


"맞벌이인 상황에서 아이를 봐주시는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다녀온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저는 이와 같은 내용이었고, 충분한 사유가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약간의 포장을 한다면 이런 식이 좋겠습니다.

' (가족 중 누군가의) 몸이 안 좋다 → 몸이 많이 안 좋다'

' (아이의) 하원 시간이 5시다 → 하원 시간이 2시다'


사유를 명확히 했다면 이제 연습을 해 볼 차례입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가족, 친척, 친구부터 시작해서 미용실 원장님,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까지 틈나는 대로 내 상황과 계획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혼자서만 답답해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딘가에든 알리고 싶어졌거든요. 다만 회사에는 괜한 소문이 날 수 있으니 가급적 알리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휴직을 썼다는 것도 아니고, 쓰겠다고 하는 선언 비슷한 건데 결과적으로 청자는 저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정리도 됐고, 공감도 얻었으니까요. 실제 말하기 전까지 좋은 예행연습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3단계 : 말하기 -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다시 몇 가지 예상 질문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봅니다.


"왜 쓰려고 하나? 얼마나 쓰려고 하나? 지금 말고 나중에 쓰면 안 되나? 혹시 기간을 단축할 생각은? 휴직밖에 방법이 없나? 아내가 집에서 애 보면 되지 않아?"


어디까지나 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만 이하에서는 제 소견을 말씀드립니다.


기간은 (어차피 찍힐 거 최대한인) 1년으로 합니다. 회유성(?) 질문에는 단호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회사에 대한 미안함을 보다 강조하면서 업무 마무리 및 인수인계를 철저히 할 것이며, 복귀해서도 열심히 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빠 육아휴직이 필요한 시기는 아이가 몇 살이든 '바로 지금'입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가서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입이 안 떨어져서 그렇지...


저 역시 마음을 먹은 후에도 말하지 못하고 몇 개월이나 다짐만을 반복했었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말한다'라고 결심한 날에도 하루 종일 눈치를 살피면서 상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내 마음가짐이 약해졌을 때 말할 타이밍을 놓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퇴근시간에 다다라서야 어물쩍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죠.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이 말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 회사에 처음인 건 알고 있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어떤 파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후련하다는 마음뿐이었구요. 아내에게 드디어 이야기했다는 카톡을 보냈고, 그날 밤 저는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생기나 봅니다. 물론 상사에게 말하기란 정말 어렵지만 그것이 시작이자 곧 끝입니다. 이후 면담을 하든 신청서를 작성하든 나머지 절차는 수동적으로 진행되니까요.


4단계 : 이후 -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CEO의 승인까지 받았다면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지만 끝까지 처신은 잘해야겠죠. 예컨대 휴직을 간다고 직접 떠벌리고 다니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소문은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니까요.


저도 최대한 평소와 같이 근무하면서도 몇 번의 면담과, 경고성 메시지와, 부러움의 시선과, 응원의 목소리와, 비아냥이 섞인 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일에 관심이 없으며, 무슨 일이든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인사평가를 앞두고 있다면 아마 좋은 고과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사라도 부하직원의 육아휴직이 반갑지는 않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문화도 차차 바뀌어 가겠죠.


다만 이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낮은 고과와 맞바꾸더라도 아빠 육아휴직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이번 휴직을 계기로 인생관에 변화가 생겼거든요.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설령 나를 싫어할지언정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쯤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도 같이 드려야겠네요. 사내 최초 육아휴직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소심쟁이인 저는 회사에서 선구자로 불리며, 특히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직원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좋아하는 건 물론이구요. 요즘도 우리 가족은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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