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시절, 직장 선배의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금융권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이었는데, 오래전 일임에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여유 있게 살려면 100억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순간 농담인 줄 알고, 웃으려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암만 봐도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결혼을 한다면 자신이 번 돈을 잘 관리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확신의 찬 그를 보고 있자니 턱없는 소리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고, 성공하려면 이 정도의 열정은 있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말은 오히려 신선했던 것 같다. 요즘 듣는 시답잖은 돈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돈이 없다는 말들 뿐이다. 버려지는 물건들로 가득한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도 돈은 늘 없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기는, 아직까진 싫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사람을 보면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됐다. 지금껏 딱 한 명 만났을 뿐이지만.
분명 돈은 우리를 옭아맨 적이 없지만 나도 돈에 매어 있음을 느낀다. 부동산이나 주식 이야기에 혹할 때도 많고, 갈수록 뭔가 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현실감각과 어른스러움을 얻은 건가 싶기도 하고...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임을 인정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것이 됐다. 때문에 온통 돈으로 점철된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돈 없이도 재밌게 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돈 좀 만진답시고 노잼인 아재 따위가 된다면 굉장히 슬퍼질 것만 같으니까.
여기저기서 돈을 팔고 있는 것만 같다. 돈만큼 잘 팔리는 상품이 또 있을까. 품절되지 않는 돈을 위해 난 무엇을 내줄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내주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