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학교 때 진로와 관련된 특강을 들을 일이 있었다.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따분했던 나는 친구와 장난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도인, 친구는 점술가라고 적은 후 재밌을 것 같다며 서로 킥킥거렸다. 그런데 점술가는 가능하지만, 도인은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로 장래희망으로는 불가 판정을 받았다. 도인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항변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됐던 건 어느 여학생의 발언 때문이었다. 반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아 이름도 가물가물했던 그 애는 연극배우가 꿈이라며 사뭇 진지한 태도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했던 행동들이 슬며시 부끄러워졌고, 모종의 부러움까지 느꼈다. 그 애에게선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요즘은 뭘 해도 '괜찮다'는 게 유행이라 그런지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도 많이 보인다. 여기에는 공감하지만 꿈이 계속해서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꿈이 있으면 관성적인 '귀찮음'이나 '하기 싫음'이라는 엄청나게 강력한 녀석들을 혼내줄 수 있다. 허튼 곳으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불안함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허무함이 더 두렵다. 꿈이라는 말이 괜히 거창하게 들린다면 일종의 '원(願)'이라고 해도 좋다. 나를 명료하게, 그리고 밝은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2
이제 유치원생인 아들에게 어른들이 자꾸 묻는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더 어렸을 때는 '기차'라는 아이다운 답변을 하곤 했었는데, 최근에는 이런 대답을 했다.
"나는 그냥 난데..."
아이가 나중에 무슨 일을 할지 궁금한 어른들의 가벼운 호기심에 대해, 직업으로 보지 말고 사람 그 자체로 대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 감명받을 뻔 하다가도, 아직 우리 아이는 훗날의 직업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