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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디얼리스트 Sep 30. 2021

아내가 둘째를 안방에서 출산했다.

둘째에 대한 고민은 수년간 계속됐었다. 한 명으론 외롭다거나, 4인이라야 가족이 완성된 것 같은 통념은 개의치 않았다. 첫째를 위해 둘째를 낳는 것도 아니었고, 돈 걱정도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다시금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다시 찾은 여유 있는 생활을 깨뜨리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들도 접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 온갖 이유를 들어 아내를 만류했다. 둘은 하나보다 몇 배는 힘들 거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체력이 필요하다, 나도 애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아이 낳고 고생했던 일을 벌써 잊은 거냐...

 

그런데 아내는 정말 잊은 것 같았다. 출산 직후에 자기가 둘째를 갖겠다고 하거든 말리라고 했었거늘. 하긴 나야말로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내는 바로 지금을 사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닥치면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해묵은 둘째 논쟁을 계속하면서 매번 이성적인 걱정으로 일관하던 어느 날 난 아내의 명료한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이가 좋아. 너무 귀여워."


평소 같으면 그걸 누가 모르냐고 받아쳤을 텐데 이상하게도 난 대꾸할 수 없었다. 늘 걱정에만 휩싸인 난 소인배인가 싶기도 했다. 언제나 철저히 피임을 했던 내가 조금씩 느슨해졌던 것도 이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은 모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지금도 후회한다. 당시의 나는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당황스러웠을 뿐.


반면 아내는 거침없었다. 이번에는 무려 가정 출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첫째 때도 조산원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애를 낳는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산파도 없이 해보겠다는 것까지는 간신히 말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아내는 정말 용감했다. 다들 맞는다는 무통주사 하나 없이 둘라 두 분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 집 안방에서 둘째를 순산했다. 생명의 신비는 다시 봐도 경이로웠다.




분명 한 번 해봤던 육아였는데 만만치 않았다. 아내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나의 걱정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짜증이 났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한 결과가 이거냐고,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왜 벌인 거냐고.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해서는 안 될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모유를 잘 못 먹고 아토피까지 생긴 아기, 계속되는 불침번에 지쳐가는 생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아내와 위로는 못 해줄 망정 쏘아붙이기만 하는 나.


나는 아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결론이 서지 않으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딨냐고, 별거 아닌 한 마디라도 해주면 안 되냐고 화를 냈던 난 아내를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씩이나 돼서 물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내가 웃음을 되찾아가고, 아기도 괜찮아지고, 나도 너그러워지면서 상황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양가 부모님, 그리고 주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예전보다 집안의 온기가 더 많이 느껴진다. 지치고 힘들 때 아이가 우릴 향해 한 번 웃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육아란 원래 그런 게 아니던가.


오늘도 가장인 내 어깨는 무겁지만, 아프지는 않다. 난 혼자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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