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숙제가 뭐라고
몇 달간 아이에게 국어, 수학 학습지를 시켰다.
집에 가는 길에 본 학습지 부스, 정확히는 장난감에 낚인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이도 하고 싶다길래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공부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기계적으로 숙제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봐도 더럽게 재미없어 보이는 학습지 숙제를
기계적으로 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다만 이렇게라도 연습을 시키는 게 나은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학습지를 안 하면 TV를 보거나 게임하는 시간만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이런 식의 학습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지.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있던 중
아이가 감기에 걸린 날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숙제 해야 돼~ 오늘 해야 돼!"
열이 나는 아이에게 오늘은 일찍 푹 자라고 했더니 울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스트레스 받아..."
매일 숙제를 하다 보니 숙제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 같았다.
나와 닮은 성향의 아이라서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 받으면 학습지 하지 말자."
아내와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학습지는 그만두자고 말했다.
어떠한 일이 하기 싫더라도, 설령 억지로 한다고 해도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건 분명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게 학습지일 이유가 있을까.
그깟 숙제가 뭐라고.
아이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네가 한글을 잘하면 좋겠어서 학습지를 했는데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심심할 때 엄마, 아빠랑 같이 공부하자. 니가 좋아하는 포켓몬 한글 책도 사놨어.
대신 게임만 너무 많이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말은 나중을 위해서 아껴두기로 했다.
'조금 늦으면 어때. 지금까지 한글을 못 떼는 아이는 못 봤는걸.
아빠를 닮았으면 넌 머리가 좋아서 나중에 공부는 잘할 거야.
너는 나 같은 아빠가 있어서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