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만 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다. 회사원의 스트레스에 비하면 주부의 일 따위... 나는 뭐든 잘할 수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육아휴직 중인 아빠로서.
왜 유치원에 가야 되냐고?
아이는 유치원 가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유치원 안 가고 싶다." 였으니. 깨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알람이나 노래 들려주기, 안아주기, 밥 먹자고 꼬시기, 윽박지르기 등 별의별 방법을 써봐도 신통치 않았는데, 실마리는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말에서 찾았다. 진리의 뽀통령. 일찍 일어나서 유치원 가기 전까지 더 많이 놀자고 했더니 귀신같이 먼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졸린 눈으로 빨리 좀 놀자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유치원이 코 앞에 있어서 등원길은 짧다.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이 시각의 이 거리가 이렇게 붐비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확실히 아빠와 등원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역시 나처럼 가정적인 아빠는 보기 힘들다는 알량하고 우쭐한 마음도 생긴다. 때때로 아이가 묻곤 했다. "유치원에 왜 가야 돼?" 적당히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하는지.
벌써부터 학원은 무슨?!
아이들 하원 시간이 1시인 관계로 부모들의 고민이 많아진다. 이제 5살임에도 영어니 미술이니 수영이니 하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아직 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는 게 내 생각인데 결국 나도 태권도를 보냈다. 그러면 3시까지는 커버가 되니까(요즘은 태권도 사범들이 하원을 도맡는다). 학원이 아이용인지 부모용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고백건대 난 학원 같은 건 안 보낼 줄 알았단다 얘야.
같이 놀자.
태권도 학원까지 갔다 오면 본격적인 놀이타임이다. 놀아준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아이를 당해낼 수 없다. 수준을 맞춰서 같이 놀지 않으면 피로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놀이터, 블럭놀이, 역할놀이 등의 루틴을 제외하면 아이와 나름 많은 곳을 다녔는데, 제일 좋아했던 건 롯데월드 같은 곳이 아니라 연못가에서 돌멩이 주워다가 던지는 놀이였다. 부모가 되면 뭔가 하지 말라는 말을 자꾸 하게 된다. 위험한 상황이야 그렇다 쳐도 옷 버리니까 놀지 말라는 건 과도한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놀이터에는 모래도 없더만. 아이들을 놀게 해 줍시다.
먹으면 배부른 알약 같은 게 나왔으면 좋겠다.
이상하다. 저녁에는 그저 아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밥 해놨는데 늦게 오거나 조금만 먹으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외식이 좋은지, 왜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는지, 왜 요리에도 창의력이 필요한지. 그냥 대충 배만 채우면 됐지 싶고, 굳이 간식도 먹어야 하나 싶고.
반성한다. 거진 어머니와 장모님이 해다 주신 반찬들로 식탁을 차리는 주제에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싶진 않다. 재빨리 집안일을 해치우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시간을 얻어도 자꾸 잠을 청하는 습관부터 고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