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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디얼리스트 Dec 07. 2021

100일의 기적은 통잠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이라는 경이로움을 만끽할 새도 없이 육아는 시작돼버립니다. 우리 부부는 둘째를 낳거든 조리원에 가지 않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후조리원은 아이보다 엄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서비스보다 가성비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6년 전이었던 첫 출산의 기억은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기는 두어 시간만 잔다는 사실은 몸소 경험해 알고 있었지만, 힘에 부쳤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 아닐까 다시금 느꼈어요. 첫째 아이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모유를 거부하는 데다 피부 트러블까지 심한 둘째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만 보면 신생아는 동물에 가깝습니다. 대체 이 아이는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우리를 알아보기는 하는 건지, 유일한 반응은 우는 것인데 이 울음의 의미가 배고픔인지, 불편함인지, 아픔인지, 잠투정인지 알 길이 없죠. 특히 밤중에 듣는 울음소리는 심장을 후벼파곤 합니다. 대답 없는 아기에게 말을 건네보며 가슴앓이도 합니다. 아기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 아마도 이래서 산후우울증이 심해지는 거겠죠.


때로는 그저 묵묵히 아기의 곁을 지키는 게 상책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아이보다 먼저 지쳐버리면 안 되니까요. 에너지를 아껴둬야 합니다. 배고픈 것 같으면 젖병을 물리고, 아래쪽이 축축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울면 안아주고,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울면 다시 안고... 아이의 반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아기가 잘 땐 무조건 같이 자야 해요.)


다행히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잠도, 아내와 교대로 하는 식사와 샤워도, 이제는 엄두가 잘 나지 않는 휴식과 개인시간 같은 제약들도 어느새 익숙해집니다. 물론 이제 할 만하다 싶으면 다시 찾아오는 힘겨움은 달갑지 않지만요.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00일쯤 된 아기가 밤에 통잠을 자서 부모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건데, 전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기적이라고 불리는 거겠죠.


100일의 기적은 통잠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아기가 우리를 보고 웃어 주거든요. 자고 있는 아기는 세상 예쁘다는 건 변함이 없지만, 우리를 보고 반응하는 아기는 매일 보면서도 믿기질 않아요. 울음과 마찬가지로 아기의 웃음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기가 웃으면 우리도 기분이 좋아져요. 아기가 계속 웃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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