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대화를 하던 중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치원에서 배웠단다. 비교적 정확한 설명이긴 하지만 이딴 정보를 왜 아이들한테 알려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촌에서는 그저 친구가 무슨 단지, 몇 동에 살고 있느냐가 중요헸다. 단지 내 놀이터는 아이들을 위한 만남의 장이었다.
중학교 때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절반, 주택가에 사는 아이들이 절반쯤 됐다. 한번은 주택가에 사는 친구 M에게 너희 집에 가서 놀자고 했더니 온갖 핑계를 대며 딴소리를 했다. 괜한 고집이 생긴 나와 같은 단지 친구 H는 함께 M을 미행했고, 끝내 M의 집 앞까지 다다랐다. 집 안에 들어가고 나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왜 M이 극구 사양하면서까지 우리를 못 오게 하려 했는지. 그곳은 단칸방이었고, 가족들은 집안에서 파카를 입고 있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으니까.
우리 가족이 중산층이라고 인식했던 건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넉살 좋은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방이 몇 칸이네, 컴퓨터가 있네 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것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들은 아직도 나를 부자라고 부른다. 당시 내가 아파트에 살았다는 이유로. 진짜 부자였다면 서울 강남에 살았겠지.
본격적으로 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전세니 자가니 하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냥 아파트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상상했던 것 같다. 실제 집값이 얼마인지 알고 나서 생각했다. 빌라에 살아야겠다고.
아내와 함께라면 공간이야 어찌 됐든 좋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얘기가 좀 달라졌다. 빌라에는 놀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려면 근처 단지 놀이터로 가야 한다. 요즘 아파트는 입장부터 쉽지 않다. 쪽문은 막혀 있는 경우도 다반사고, 웅장한 입구를 지날라치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놀이터 한 편에 붙어 있는 외부인 출입금지 딱지를 보면 불청객이 된 것만 같다. 옆 단지 아파트가 아닌 빌라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목격했던, 경비 아저씨가 외부에서 온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쫓아내는 광경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우리는 걸리지 않았다.
요즘은 핸드폰 터치 몇 번이면 아파트 시세 확인이 가능하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우리 집이 얼마인지, 친구네 집이 얼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가급적이면 비슷한 수준의 동네에 살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 이런 문제로 움츠러들거나 우쭐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골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날이 오면 대문 앞에 팻말을 하나 붙여놔야겠다. OO마을 센트럴 포레 더 퍼스티지 아크로 써밋 정도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