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er Speak

서울에서 진짜 대동강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by 고첼

2018년 4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남과 북의 양 정상이 만나 북핵 포기와 남과 북의 활발한 교류를 약속하는 판문점 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양국 두 정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만찬과 공연을 즐겼는데요. 배달의 민족인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나 ‘먹방’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옥류관의 냉면 재료를 가져와서 두 정상은 평양냉면으로 만찬을 즐겼습니다. 회담이 끝난 후, 주말 동안에 전국에 평양냉면집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뉴스 기사가 날 정도로 평양냉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평양냉면을 먹어 보고고 싶다는 열망을 넘어서 몇 년 후, ‘옥류관 서울 직영점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했습니다.

옥류관 서울 직영점이 생긴다면 어떨까?

몇 해 전, 미국에서 유명한 쉑쉑 버거 1호점이 강남역 부근에 오픈했을 때의 상황이 기억이 납니다. 쉑쉑 버거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SNS에서는 미국에서나 맛볼 수 있는 햄버거를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자극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쉑쉑 버거 강남 1호점이 공식 오픈을 했을 땐,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에서 건너온 버거느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도들의 줄이 매장 밖, 몇 백 미터까지 이어질 정도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뉘었습니다. 쉑쉑 버거를 기다리는 자와 기다리지 않는 자.

저는 당시 후자에 속했고 후자였던 사람들은 전자였던 사람들이 유난을 떠는 것이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금세 열기가 식을 것이라며, 그들의 버거느님에 대한 열광적 신봉을 비하했습니다. 하지만 쉑쉑 버거의 열기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옥류관 서울 직영점의 오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때도 나는 쉑쉑 때처럼 후자로서 쿨내음을 풍기며 줄을 서지 않을 것인가?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8시 뉴스 앵커의 음성이 나옵니다.


"시청자 여러분 마침내 옥류관 대한민국 1호점이 광화문에 오픈을 했습니다. 현재 이곳 옥류관 서울 직영점에는 평양냉면 맛을 보기 위해서, 정말 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영업 시작 시간은 금일 오전 10시였지만 백여 명의 시민들은 금일 자정부터 이 곳 옥류관 서울 1호점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그중, 한 분을 모셔서 잠깐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자정이 조금 넘는 시간부터 기다리셨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네 물론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조금이라도 빨리 맛보기 위해서 줄을 선 것도 맞기는 한데요, 저는 평양냉면 못지않게 꼭 먹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평양냉면뿐만 아니라 기대하신 것이 또 있으셨다고요?”


“네! 바로 북한의 대동강맥주입니다.!!!"

1452680468 복사.jpg 네, 저는 대동강 맥주와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서 밤을 샐 것 같습니다. 쉑쉑 줄 서는 사람 비하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만약 옥류관이 서울에 오픈한다면 반드시 줄을 서서라도 평양냉면뿐만 아니라, 대동강 맥주를 양껏 시켜 먹을 겁니다. 물론 대동강 맥주도 필스너 계열이기 때문에 남한의 카스와 맛이 드라마틱하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칭따오나 하얼빈 같은 맥주와 맛이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맛이 어떤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대동강맥주는 단순히 '마셔보기 힘든 맥주'가 아닙니다.

대동강 맥주는 마치 맥주계의 마리화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일 뿐만 아니라, 웬만한 알코올보다 안전하다고 인식되기도 하고, 특정 질병에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는 마리화나. 하지만 국내에서는 명백히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마리화나가 합법적으로 이용되는 나라에서 조차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이용해서 안 되는 것처럼,


북한의 대동강맥주는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념적 문제 때문에라도 함부로 마실 수 없는 맥주입니다. 더욱이 그런 금단의 영역에 위치한 대동강맥주에 대해서 영국 이코노미스트 출신 기자, 다니엘 튜더는 대한민국의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튜더 기자의 그 한 마디는 남한 국민들의 대동강 맥주에 대한 환상과 기대치를 북한의 미사일 마냥 끌어올렸으며, 국내의 한 맥주 회사는 그 기자와 함께 ‘대X강 페일에일’이라는 네이밍 마케팅을 이용하여 맥주를 출시해 대박을 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주를 좋아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서울에 옥류관이 생긴다면, 평양냉면도 평양냉면이지만 대동강맥주를 더욱 기대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쉑쉑버거의 서울 프랜차이즈 사업 진출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줄인 만큼, 개인들의 미식 경험의 범위를 단번에 뉴요커만큼 넓힌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옥류관이 서울에 오픈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서울과 평양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문화적, 이념적 경계를 허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처음 칭타오 맥주도 국내에 유통될 때, 그 당시 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와 경제 능력 등의 이미지를 투사하며 칭타오 맥주의 본질적인 가치를 평가 절하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식문화가 우리의 생활 내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칭타오 맥주의 평가뿐만 아니라, 중국의 식문화도 높게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질감도 서서히 희석되었죠.


반면에 당시 중국의 상황보다 많은 면에서 비슷하거나 뒤쳐져있는 북한이지만 맥주와 평양냉면 등을 비롯한 식음료 문화만큼은 앞서 말한 많은 이유로 평가절상되어있죠. 다시 말해서, 어쩌면 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의 식문화를 포함한 많은 것들을 이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북이 서로의 음식과 맥주를 그리고 문화를 교류하다 보면, 분명히 서로의 사상과 이념 또한 희석될 것이고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하나가 될 날이 분명히 오겠죠.

남북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날이 오면, 북한 주민들은 우리나라의 맥주를 어떻게 평가할지 갑자기 그게 궁금해지네요? 과연 영국의 그 기자와 같은 평가가 나올까요?


4.27 판문점 공동선언을 보면서 또 평양냉면을 먹으며 남북 정상이 웃음짓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네요.


여러분들은 남북의 문화가 교류되면 무엇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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